젊은 재미교포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로 미국 현지 경찰에 입건된 윤창중 청와대 전 대변인에게 어떤 방식으로 법적 조치가 취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다.

미국 수사기관이 수사할 경우 범죄인 인도 등 절차를 밟아 윤씨의 신병을 넘겨받아 현지 사법절차에 따라 조사를 진행할 수 있다.

만약 한국에서 수사를 하게 되면 윤씨는 국내에서, 피해자는 현지에서 각각 조사를 받게 되고 한국 측은 피해자의 조서 등을 넘겨받아 혐의 여부와 처벌 수위 등을 정하게 된다. 이 경우에도 피해자가 처리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현지에서 다시 민·형사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시나리오별 사법 절차나 처벌 수위는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복잡한 '경우의 수'로 나누어 전망할 수 있다.

●범죄 혐의 확정이 관건 = 일단 윤 전 대변인의 범죄 사실이 명확히 파악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은 윤씨가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의 한 호텔 내에서 '(피해자의) 허락 없이 엉덩이를 만졌다'는 것이다.

현지에서 사건이 발생한 시각은 7일 오후 9시 30분, 종료 시각은 오후 10시이다.

범죄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성추행인지, 성폭행인지, 또 성추행이라면 어느 정도의 범행이었는지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벼운 사안인 경우 한국에서 수사를 진행할 수 있으나 중대한 사건이라면 미국 수사기관이 직접 수사할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중요성과 수사의 효율성 등을 비교해 관할권 행사 문제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미국 사법당국은 한미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윤씨를 직접 조사하기 위해 신병을 넘겨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조약 적용 대상은 양국에서 범죄가 인정돼야 한다. 성추행, 성폭행은 모두 양국에서 성범죄다. 형량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만 성추행의 경우 양국의 관념이 다소 다르다. 미국의 경우 성추행 범죄를 다룰 때 정신적 피해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은 남자만 성추행 주체로 인정하지만 미국은 남녀 모두 성추행 주체가 된다.

통상의 경우 형법상 속지주의와 속인주의에 따라 사건을 처리한다. 이번 사건은 속지주의에 따라 미국에서 수사를 하고 있다. 윤씨가 현재 한국에 있기 때문에 속인주의에 따라 한국에서도 수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양국 모두 속지주의·속인주의를 적용하므로 설령 두 원칙이 다소 충돌하더라도 심각한 문제가 생길 일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성추행인 경우 신체 일부를 만지는 '단순한' 성추행인지, 아니면 위력 행사·폭행 등을 동원한 '중대한' 성추행인지 하는 범행의 경중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전자라면 한국에서도 수사할 수 있다. 윤씨가 한국인인데다 이미 국내에 입국했기 때문이다. 후자라면 미국에서 수사할 가능성이 크다.

●유사 사례는 = 이번 사건은 공직자가 공무 출장을 위해 잠시 외국을 방문했다가 현지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이다.

유사한 사건의 국내 판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외교관이나 기업인 등이 외국에서 교통사고, 도박, 밀수 등에 연루돼 현지에서 입건됐거나 처벌받은 경우는 여러 건이 있다.

이 사건을 한국에서 수사할 경우 결론이 어떻게 나더라도 피해자가 미국 시민권자이므로 현지에서 민·형사 절차를 다시 밟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사건 중에서는 BBK 사건이 이와 유사하다. BBK 사건을 저지른 김경준씨는 국내에서 형사처벌을 받았지만 미국에서도 민·형사소송이 진행됐었다.

해외 사례의 경우 프랑스의 스트로스 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전 총재가 지난 2011년 5월 당시 뉴욕 맨해튼의 소피텔 호텔에서 여자 종업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돼 미국 검찰에 의해 기소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수사·재판 과정에서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뉴욕 검찰은 공소 취소를 요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공직자 처벌 선례 부담 = 경위가 어찌 됐건 이번 사건의 처리 결과는 한미 양국에 정치적·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단순히 생각하면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사법절차에 따라 신속히 처리하면 된다. 미국이 수사를 하고 윤씨의 신병을 인도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윤씨는 대통령 방미 수행단으로 미국을 방문한 상황에서 성범죄 의혹이 나왔다. 즉 외교 사절의 현지 범행 의혹 사건으로 볼 여지가 있다.

미국 사법당국이 손쉽게 체포하거나 범죄인 인도를 요청하기가 까다로울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좋지 않은 선례'로 남을 가능성이 우려된다.

향후 공무 수행차 외국을 방문한 공직자가 각종 범죄에 혹시 연루될 경우 해당 국가가 이번 사례를 선례로 들어 체포·인도 등을 요청한다면 거부할 명분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 가능성이 점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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