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강동대학교 교수)

  세상은 변화무쌍(變化無雙) 하게 변하고 있다. 또한, 변해야만 하는 것이 세상이다. 변하지 않는 세상은 없어진 세상이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우리가 사는 세상은 꾸준히 변해야만 한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세상을 순리대로 적응하며 산다는 것이 매우 힘들다. 험난한 세상을 마음먹은 대로 산다는 것은 어렵다. 아니 절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 먹은 대로는 절대로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음먹은 대로 절대로 안 되는 것은 아니며, 그것은 단지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 세상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인 세상이다. 이세상은 마음먹은 생각의 정도에 달려있다. 즉, 이세상의 모든 일은 내가 생각하기에 따라 마음 먹은 대로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하는 것이다. 즉,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이다. 따라서, 이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 중에 가장 의미심장한 일체유심조에 대하여 꼽씹어 생각해보자.
  일체유심조란 불교의 화엄경에 나오는 말이다. 일체유심조란 화엄경(華嚴經)의 중심 사상으로, 일체의 제법(諸法)은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이고, 존재의 본체는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 뜻이다. 곧 일체의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일체유심조와 관련해 자주 인용되는 것이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와 관련된 이야기 이다. 원효는 661년(문무왕 1)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당의 당항성(唐項城:南陽)에 이르러 어느 무덤 앞에서 잠을 잤다. 잠결에 목이 말라 물을 마셨는데, 날이 새어 깨어 보니 잠결에 마신 물이 해골에 괸 물이었음을 알고, 사물 자체에는 정(淨)도 부정(不淨)도 없고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달렸음을 깨달아 대오(大悟)했다는 이야기이다. 원효는 그 길로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왔다. 일체유심조는 원효대사께서 깨달음을 얻은 불교의 사상이다. 더럽고 추하고, 아름답다는 모든 생각은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하였다. 이는 사람의 위대함은 생각하는 능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내 인생의 목적지, 진정한 나의 행복을 위해 나의 삶의 방법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사람답게 살고 있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내 삶의 방법이 올바르게 정립되어 있는지? 한 평생을 후회 없이 소중한 나를 위해 열심히 가꾸고 보살폈는지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정리하여야 보자. 말 그대로 깊은 성찰과 생각의 정립으로 나의 행복은 만들어 질 것이다. 즉, 올바른 생각과 성찰이 내 인생 행복의 전환점(Turning point)이 될 것이다.
  모든 일은 목표에 대한 마음이 좌우하는 것으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처럼 하고자 하는 의지를 불사르고, 실천하고자하는 마음(心)을 굳건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공식적으로 인정된 기록에 의하면, 불교는 한국에 들어 온지 가장 오래된 종교이며 사상이다. 현대사회는 종교와 철학을 이원적으로 분리하는 경향도 있으며, 현재의 불교는 기독교의 도입과 함께 변하였다. 부처님은 예수님처럼 믿음을 말씀하시지 않지만, 눈으로 보라고 한다. 눈으로 직접 응시하라는 의미가 부처님 설법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불교의 좋은 말씀 중 마음에 와닿는 어귀로 야부 스님의 금강경 야부송이 있다. 정원에 있는 꽃은 웃고 있지만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숲속에 있는 새는 울고 있지만 눈물은 보이지 않으며, 그림자는  쓸어도 티끌 하나 움직이지 않고 달이 연못을 뚫지만 흔적조차 없다는 의미이다. 즉, 이세상은 눈으로 보여지고 변화되는 것이 전부인 듯 하지만, 마음으로 모든 것을 꽤뚫고 통찰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마음으로 정립하고 억눌러야 하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은 마음으로 보고 생각하고 다스리며 산다면 우리네 삶의 행복지수가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가정의 달 5월, 푸르른 달 5월, 행복한 달 5월을 마음으로 다스리며, 행복한 나날이 이어지는 5월이 되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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