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 김기창 화백 탄생 100주년파행운행

운보의 집 정상화 대두
정상화대책위 문체부에 재산관리·정상화 요구
이사회 해산…잔여재산 충북도 이관·운영 바람직

한국화의 거장 운보 김기창 화백이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그를 기념하는 행사는 너무 초라하기만 하다.
특히 ‘운보의집’은 파행운영과 관리부실로 인한 건축물 훼손이 심각한 상태다.
이에 따라 ‘운보의집 정상화대책위원회’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승인한 운보문화재단이사진의 재단운영 및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와 함께 재산관리 및 운보의집 정상화를 적극 요구하고 있다.
동양일보는 운보가 태어나서 죽기까지 작품세계 등 일대기와 운보의집 현재 상태, 정상화대책 방안 등에 대해 알아봤다.

●운보 김기창 화백은
운보는 1923년 2월 18일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장티푸스에 걸려 고열로 인한 후천성 청각장애인이 됐다.
17세에 승동보통학교를 졸업했으며, 어머니(한윤명)의 권유로 이당 화백 문하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지 6개월 만에 ‘판상도무 널뛰기’로 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첫 입선했다. 이 때 어머니가 아호를 운포(雲圃)라고 지어줬다.
운보는 조선미술전람회 처음 입선 후 ‘수조’(11회), ‘여인’(12회), ‘정청’(13회), ‘엽귀’(14회), ‘해녀’(15회)로 연 5회 입선과 ‘고담’(16회), ‘하일’(17회), ‘고완’(18회), ‘여일’(19회)로 특선해 추천작가가 됐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구속으로부터 해방됐다는 의미로 운포(雲圃에서 口를 없애고 운보(雲甫)로 바꿨다.
이듬해 화가 우향 박래현(1971년 1월 2일 57세 일기로 별세)과 결혼했고, 1952년 ‘예수의 생애’ 제작에 착수, 1년 동안 29점의 예수 일대기를 완성했다.
홍익대미술대학과 수도여자사범대학 교수, 국전 초대작가·심사위원 등을 지냈다.
1976년 5월 남경화랑 개인전에서 처음 ‘바보산수’를 발표했다.
산수·인물·화조·영모·풍속 등에 능하며, 형태의 대담한 생략과 왜곡으로 추상과 구상의 모든 영역을 망라하고 활달하며 힘찬 붓놀림, 호탕하고 동적인 화풍으로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5년 한국은행의 요청으로 1만원권 지폐에 들어갈 세종대왕 얼굴을 그렸으며, 1993년 예술의 전당 전시회 때 하루에 1만명이 입장한 진기록도 세웠다.
대표작으로 ‘가을’(1934), ‘보리타작’(1956), ‘새와 여인’(1963), ‘소와 여인’(1965), ‘태양을 먹은 새’(1968), ‘나비의 꿈’(1968), ‘군마도’(1970), ‘웅’(1970), ‘달밤’(1978) 등이 있다.
은관문화훈장과 국민훈장 모란장 서훈, 금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1991년 근대올림픽 100주년 기념 I.O.C선정 ‘세계유명작가 50인 판화전’에 선정됐다.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회에서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으로도 선정됐다. 지난 2001년 1월 23일 88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운보의 집은
운보의집(청원군 내수읍 형동리)은 김기창 화백이 71세 되던 해인 1984년 완공해 2001년 1월 23일 작고할 때까지 생활하던 곳이다.
이곳은 어머니의 고향으로 1979년 전통 한옥으로 착공, 6년에 걸쳐 완성됐다.
전체 8만3000㎡의 대지에 운보의집을 비롯해 운보미술관·수석공원·조각공원·도자기공방·연못·정원·찻집 등이 있다. 운보의 집 중턱엔 부인 박래현의 묘와 합장된 운보의 묘가 있다.
운보미술관에는 대표작 50여점과 도자기·판화·스케치, 유품, 부인 박래현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운보는 이곳에 “나는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을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당당하게 살아왔다. 늙어갈수록 조용한 속에서 내 예술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직접 글을 적었다.

●파행 운영
운보의집이 12년째 달갑지 않은 입줄에 오르내리고 있다.
김기창 화백은 말년에 건강이 악화돼 작품 활동을 못하게 되자 사후 대비 준비를 하게 된다. 건강악화로 1979년 이후 작품 활동을 중단하면서 운보의집 운영부채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당시 운보의집 운영에 월 관리비가 2000만원 정도 소요됐다.
운보는 자식들에게 가진 것을 모두 사회환원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재단설립 준비에 들어갔다.
재단설립을 위한 부채청산을 위해 운보의집 수익시설을 조건부에 매각하고 7870평의 대지를 팔았다. 운보는 재단설립 준비 중 사망했다. 2001년 1월 숨을 거둔 후 3월에 운보문화재단이 설립됐다.
운보의집은 증여와 매각 과정을 거치면서 운보문화재단과 (주)운보와 사람들이 공동 운영했으나 ‘운보와 사람들’에 투자한 금융회사의 부도로 일부 시설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파행 운영을 거듭하고 있다.
당시 운보문화재단 재정지원을 조건부로 수익시설을 맡았던 ‘운보와 사람들’이 파산해 재단지원약속 불이행과 수익판매시설을 경매로 잃게 돼 계약이행 위반에 따른 운보문화재단과 관계가 자동 청산됐다.
(주)운보와 사람들이 관리했던 땅과 건물은 서울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했던 한모씨가 2005년 낙찰 받았다가 2010년 경매시장에 나왔다.
4차례의 유찰 끝에 2011년 곽모씨가 12억5110만원에 낙찰 받았다. 곽씨에게 돈을 지원한 사람은 지역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업가다. 낙찰된 부지는 주차장을 비롯해 편의시설, 아트숍 등이 있다. 운보의집 일부인 토지 2만5772㎡ 등 부동산 2만6997㎡다.
운보의 자녀들은 운보의 지시로 재산상속포기 서명 후 미국으로 떠난 상태다.
운보 생애 마지막 결심(사회환원)은 삶의 정리이자 자신의 과거에 대한 겸허한 결심이지만 운보문화재단은 최소한의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어 지역 예술계의 공분을 사고 있다.
재단의 핵심 시설인 운보의집은 목재가 부식되는 등 관리부실이 역력하다. 주차장 부지는 경매로 넘어가 관광버스를 세워둘 곳이 마땅치 않다.
주말 2000여명에 달했던 방문객은 현재 30~40명 정도고, 평일엔 그림자조차 볼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운보문화재단은 지난 2009년부터 정상화를 이유로 입장료를 4000원으로 올리고 정비에 나섰다고 하지만 찾는 발걸음은 더욱 뜸해지고 있다.
지난 겨울에는 아예 문을 닫기도 했다. 한파로 인해 수도 동파 등 도저히 문을 열 수 없는 상황이라 휴관을 결정했다고 한다.
일차적인 책임은 재단 이사진과 사실상 실세인 후원회장 황인연씨에게 있다. 6명의 이사 중에 김동연 이사장만 지역 인물이고 모두 외지인으로 구성됐다.
그나마 김 이사장도 5월에 이사장직을 내놓고 평이사로 물러나 새 이사장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운보문화재단이 2007년부터 이사진 구성을 놓고 내홍과 파행을 거듭해오자 당시 충북예총을 비롯한 지역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운보의집 정상화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은 백철부 이사장에 대해 법원에 직무정지를 요청, 2008년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김동연 전 청주예총회장을 이사장 직무대행자로 선임해 2009년부터 이사장직을 맡아왔다.
운보문화재단은 최근 전 화순군의원인 김경남씨를 새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김 씨는 2009년부터 운보문화재단 이사로 활동해 왔다.
이사들은 4년 임기를 마치고도 연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임수정(상임이사) 운보미술관관리인과 김경남 전 화순군의원, 김동연 전 청주예총회장 등 세명의 이사가 4년 임기를 마치게 됐지만 연임이 결정됐고, 이태화 변호사와 전병선 전 KT지사장 등 감사도 올해 2년 임기가 끝났지만 연임키로 했다.
윤정식 청주MBC방송 사장과 강보경씨는 2011년 이사로 들어와 임기가 남았다.
후원회장인 황씨가 운보문화재단에 후원금을 준다는 이유로 이사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상임이사인 임수정씨는 황씨와 부부관계인데다 나머지 인물도 연관성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운보문화재단의 이사라면 운보 선생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거나, 후원금을 내놓는 등 뭔가의 ‘업적’이 있어야 하지만 지난 4년여 동안 활동해온 이사들과 이사장은 그렇지 못했다.
현재 후원회장을 자칭하며 지난 2007년 300억원 투자하겠다던 황씨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이사회 구성에 관여해 사실상 회복불능에 빠졌다.
운보의집 정상화대책위는 “황씨는 투자가 아니라 오히려 훼손을 해왔다. 국가의 공익재단이자 운보선생이 남긴 모든 것을 마치 개인 별장처럼 쓰고 있다”며 “운보의집을 정상화하려면 외지인들로 구성된 이사진과 이사장부터 사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초라한 탄생 100주년
올해는 운보 탄생 100주년이지만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전혀 기획되지 않았다.
운보의집 파행 등으로 100주년이 되는 2월 18일에는 어떤 행사도 열리지 않았다. 지난 1월 23일 작고 12주년을 맞아 운보의집을 찾았던 청음회관, 운보원, 청음공방 관계자 등 50여명이 운보미술관장이 문을 열어줘 미술관 내부를 둘러보며 추모의 뜻을 기린 게 전부다.
운보문화재단에 따르면 오는 10월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운보가 그린 ‘예수 일생 시리즈’ 30점을 전시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전시회는 매년 가을 개최하는 전시회의 일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충북도 관계자는 “2011년부터 10월께 운보 선생 전시회를 할 때 1000만원을 지원해왔고, 올해도 지원할 계획”이라며 “100주년 기념사업과 관련된 사업계획서 등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상화 방안은
좀처럼 상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게 되자 운보문화재단 이사진의 완전개편과 충북도의 시설이관 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지역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 청주·청원 민간사회단체 대표 등으로 구성된 ‘운보의집 정상화대책위원회는 지난 달 말 문화체육관광부에 정상화 요구를 건의하고 나섰다.
이들은 지난 2009년 문체부가 승인한 운보문화재단이사진의 재단운영·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재산관리에 대한 정상화를 요구했다.
‘2009년 이사승인요청시 300억원투자를 통한 활성화 약속 불이행’, ‘지난 4년간 운보의집 파행운영과 관리부실로 인한 건축물 훼손’ ‘문체부소유 운보의집 운영권 재단이사장이 아닌 개인에 양도’ ‘건축물에 대한 원형훼손과 방치로 인한 훼손의 원상복구 불이행’ 등을 문제점으로 들었다.
대책위는 “운보문화재단 설립목적을 상실하고, 유무형재산에 대한 손해와 재단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지역 경제활성화에 막대한 손실을 입게 한 이사회를 해산하고 잔여재산을 충북도로 이관·운영토록 해 달라”고 문체부에 요구했다.
이들은 “아니면 문체부가 운영에 개입해 해당지자체의 관계자들에 의한 당연직이사의 구성을 추진해 주고,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를 원상복구해 예전의 명성과 화려한 모습을 되찾도록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충북도와 문체부 등에 따르면 대책위의 이 같은 요구에 대해 문체부가 검토해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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