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논설위원 · 청주대명예교수)

전당대회에서 압도적인 표를 얻어 당의 얼굴로 선출된 제일 야당의 대표와 지도부가 취임 인사차 국립현충원을 찾아가 같은 정파출신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소만 참배하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는 들르지 않았다. “왜 두 분의 전 대통령 묘소는 참배치 아니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정이 바빠서”라는 내용으로 답변하였단다. 며칠 지나서는 먼 거리의 김해 봉하 마을까지 가서 노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면서 국립현충원에서는 시간이 없었다는 이유로 같은 경내의 두 전직 대통령에게의 참배는 외면한 것이다. 이러한 뉴스를 시청한 많은 국민들은 “이같은 행보야말로 편파적인 행보가 아닌가. 국민들에게는 통합을 부르짖으면서 자신들은 특정정파의 굴레에 꽉 묶여있는 것이 아닌가.” 라며 탄식하고 있다. 국립현충원은 조국을 위해 몸 바쳐 산화하였거나 헌신한 애국선열들이나 지사들을 모신 곳이다. 국민들로 하여금 그 분들의 고귀한 충절을 기리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조성하고 국가혼의 산실로 관리되는 곳이다. 글자 그대로 현충(顯忠)의 집(院)이다. 그래서 새로이 국정 및 정당책임자로 선출되거나 현충일을 비롯하여 국가적 큰 행사시에는 이곳을 참배하고 선열들의 고귀한 정신을 이어받아 국가지도자로서의 소임을 다 할 것을 엄숙히 다짐한다.
국가지도자의 지위에서 공식적인 의전의 일환으로 국립현충원이나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함에 있어서 특정인만을 대상으로 선별적으로 경배하고 각오를 피력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공명정대하다고 볼 수 없다. 이는 정치이념이나 국정의 공과(功過)를 떠나 국정최고책임자의 전력을 부인하는 것이 되고 국정의 역사를 이분법의 시각에서 재단하는 편파적 행동이라 아니할 수 없다. 더 나아가 동류의 정치무대에서 활동하는 지도자 내지 정치인으로서의 자기부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선열들과 지사들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국가의 공로자이다. 정당의 전직 대표로서가 아니라 전직 국가원수로서 봉안된 분들이다. 정부는 국민의 위임을 받은 헌법기관이라는 점에서 국립현충원에 모셔진 전직 대통령들은 똑같이 국민들로부터 국가유공자로 공인된 분들로 보아야 한다. 더군다나 유명을 달리한 국가공훈자라는 관점에서 경의표시에 인색하여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 국민의 일반적인 인식이고 정서라 본다.
그런데도 이러한 인식과 정서가 공공연히 배척 내지 도외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치이념과 주의(主義)를 내세워 국민들을 ‘네 편’, ‘내 편’으로 갈라놓는 것과 같고 자기편이 아닌 사람들을 적대시하는 것과 같은 행위인 것이다. 가뜩이나 정치권이 좌파, 종북, 진보 세력 등의 등장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이로 인하여 국기가 흔들리고 있는 때에 국민에게 새롭고 신선한 정치행보를 보여주지 못하고 정당이기주의 내지 자기모순의 틀에 갇혀있는 모습인 것이다.
국가지도자 및 정치지도자는 지도자다운 금도(襟度)를 가져야 한다. 시대정신과 역사 앞에 겸허하고 대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고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정정당당하여야 한다. 논어에 나오는 ‘정치는 바른 것을 행하는 행위라는 정자정야(政者正也)라’는 말처럼 정치인들은 ‘바름(正)’만을 추구하고 실천하는 정치의 전위대 및 연출자, 그리고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 국민들이 어떻게 보느냐 와는 상관없이 자신이나 정파의 이익 및 목적을 위한 행동을 해서는 아니 된다. 오로지 국리민복과 대의구현의 차원에서 진정성을 담보로 표리와 언행이 일치하는 행보를 하여야 한다. 편파적이거나 편협적이거나 독선적이거나 정당이기주의적인 행태는 과감히 떨쳐버려야 한다. 국민들은 정치지도자들이 말로만 ‘새 정치’나 ‘정치쇄신 및 혁신’을 부르짖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국민의 일반적 인식이나 상식에 맞는 판단과 행동, 누가 보아도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떳떳하고 당당하며, 역사적 족적으로 기록될 수 있는 행보를 기대하는 것이다.
애국선열이나 지사들이 잠들어 있는 신성한 곳, 국가발전을 위하여 헌신한 국가유공자의 혼을 모신 묘역, 국가의 이름으로 모셔진 국가공훈자들의 안식처인 국립현충원 ! 더없이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하고 그 뜻을 새겨야 한다. 그렇기에 국가지도자 및 정치지도자로서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기 위한  참배는 그에 맞는 대의와 품격을 갖추어야 한다. 살아있는 역사를 부정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거나 국민의 상식과 정서에 맞지 않는 편파적 행보를 해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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