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길(논설위원, 소설가)

 어제 게을렀던 사람은 오늘 후회하고, 오늘 헛된 짓에 몸을 던진 사람은 내일 참담한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 과거는 어차피 지나간 일, 거울로 삼되 얽매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재는 아니다. 순간순간의 모든 행위가,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조각하는 끌질과 같기 때문이다.
 “난 윤회라는 게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 윤회를 받는다고 생각해. 그러니 살아 있는 한 순간 한 순간이 중요한 거지. 일일일야 만사만생(一日一夜 萬死萬生), 하루 사이에 만 번 죽고 만 번 사니, 얼마나 열심히 살아야겠어.”
 설악산 신흥사 조실(祖室) 오현 스님이 부처님오신 날을 앞두고, 동아일보 김갑식 기자와의 대담(동아. 5.16. A1~2면)중 한 말씀이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은, 현재의 한 순간이 다음 순간에 환생할 자신의 모습을 결정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니, 헛된 짓에 빠지거나 교만한 맘 품지 말고, 부지런하고 바르게 살라는 뜻이지 싶다. 육신에 들이 밴 나태, 흉중에 가득 찬 욕심, 박통만한 머릿속에 만 가지 망상이 들어 찬 중생들이 그 깊은 뜻을 제대로 알기도 어려우려니와, 어설피 짚이는 뜻이나마 실천하기엔 더욱 어려운 일이다.     
 성인들의 자아관리책임은 당연 하지만, 청소년들의 오늘과 내일을 관리해야할 책임도 성인들의 몫이다. 청소년들의 성장과정은, 미래의 삶을 위한 경험을 쌓고 그 경험을 통하여 지혜와 능력을 키워가는 학습의 연속이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미래에 대한 꿈을 갖게 하는 것, 꿈의 실현을 위한 판단력과 의지력을 길러주는 것, 이런 모든 것이 부모와 교사, 이웃 어른들의 책임이다. 때문에 언제, 어떤 것을 경험하는가에 따라, 청소년 각자가 새길 미래의 자화상은 결정 된다.
 인천 전자랜드 프로농구 팀의 이현호 선수가, 놀이터에서 담배를 피우는 5명의 남녀 중고생을 나무라다가, 손바닥으로 한 학생의 머리를 때렸다는 이유로 경찰에 고발당했다. 이 선수의 질책을 ‘고맙다’고 한 부모도 있었지만, 두 여학생의 부모는 이 선수의 처벌을 원했다.   이 선수가 즉결심판에 넘겨지면 20만원 안팎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단다. 물론 결과는 아직 미지수지만, 기사를 읽은 독자들의 심경은 일면 착잡하면서도 일면 궁금할 것이다. 나무라는 이 선수에게 ‘아저씨가 뭔데...’ ‘아저씨 돈 많아요?‘라며 대들고, 이 선수를 경찰에 신고한 학생들의 행위, 이 선수의 처벌을 원하는 학부모의 반응에 착잡함을 금할 수 없을 것이고, 법은 과연 이 선수의 행위에 어떤 판결을 내릴까가 궁금할 것이다.
 이 선수는 ‘손을 댄 것은 잘못이다. 그냥 죗값을 달게 받겠다.’고 했지만, 이 선수의 행위가 법을 어긴 죄가 되고, 학생들의 소행이 법의 보호를 받아야할 상황이라면, ‘법은 정의의 편’이라는 사회통념은 과연 진리인가. 청소년들을 위한 어른의 책임이란 결국 안내와 조장, 선도와 교화로 집약 될 것이다. 사랑과 보호가 전제라지만, 그 속엔 상찬과 질책의 수단도 포함 된다. 선도를 위한 선의의 질책, ‘손바닥으로 머리를 때린’것을 폭력으로 몰아 징벌한다면, 누구라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성인의 책임’을 외면할 것이다. 이 선수의 처벌을 원하는 부모들처럼 내 자식의 행위는 ‘타인 관여불가의 성역’이라 고집한다면, 비행청소년들은 외면과 방치 속에 안하무인의 독불장군이 되고, 내일의 세상은 어린폭군들의 천하가 될 것이다.
 청소년들의 삶은 하루, 순간순간에 다시 태어나는 환생이다. 굳이 오현 스님의 법문(法問)이 아니라도 시시각각, 갖가지 경험을 통해 새로운 지혜와 새로운 능력을 쌓아, ‘새로운 나’로 환생하는 것이 곧 성장이니, 성인들 보다 오늘 하루의 가치는 더 소중하고 값진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그릇된 경험, 그릇 된 생각들이 어른들의 책임회피로 방치되어 오늘 바로잡지 못한다면, 그들의 부실한 인성이 새길 내일, 미래의 조각상은 절망적이다.
 하루하루를 반듯하고 부지런하게 살아도 바른 인성을 닦기는 쉽지 않고, 인성이 부실한 자는 때를 만나도 빛을 발하지 못한다. 못된 끌질로 국가체면을 깎고 국민을 분노케 한 청와대 전 대변인 윤창중 씨가 그런 격이다. 어렵게 때를 만나 권력의 중심부에 진입했으나, 교만과 독선으로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하더니, 먼 이국땅에 가서 그예 일을 저질러,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인성과 자질을 바르게 키울 때를 잃었던 탓이지 싶다. 
 ‘때를 만나기는 어렵지만 잃기는 순간이다.’ 사마천(司馬遷)의 말이다. 청소년들이 좋은 경험을 쌓고 반듯한 인성을 기를 때(기회)도 그리 쉽게, 무한량 오는 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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