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논설위원, 소설가)

 구열이 얘기가 다시 마을에 등장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나라 안팎에서 일어나는 성희롱이니 성폭력이니 하는 뉴스가 시골구석까지 파다히 퍼지고 있는 판에 나라님을 보살피고 대변하는 사람의 이에 대한 불미스런 일까지 덧붙어 한마디씩 안 하는 사람이 없고 보니 마을사람들에게 새삼 구열이의 사건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구열이 걔 올해도 제 부모님산소에 다녀갔는가?” “그럼, 어떤 부모들인가. 저 땜에 당신들 명대로도 못 사신 분들인데.” “그려, 참 아까운 놈여. 얼마나 노래를 건드러지게 잘도 뽑아 넘겼는가!” “의리는 어떻구. 우리들 어떻게 될까봐 저 혼자 다 뒤집어썼잖여. 따지고 보면 뭐 그리 학교 그만 두고 집까지 나갈 일도 아닌데 말여.” “그놈 이빨쟁이 때문이야. 그 작자가 그렇게까지만 안 했어두….” “그 인간 그거 진작에 인간 같지도 않은 짓을 하고 있었다는 걸 누가 행여나 알았는가. 그야말로 짐승만도 못한 놈이제.” 구열의 옛 친구들이 지난 날 사건을 놓고 안타까워한다.
 동네끝자락에 돌팔이치과의사가 들어 온지 이태가 됐다. 그렇지만 동네사람들과는 접촉이 없다. 야매로 이빨을 치료해 주고 틀니를 해준다는 남자라는데 그 동안 한 번도 동네사람들을 상대로 의료행위를 한 적이 없다. 그래서 동네에선 그냥 이빨쟁이라고 한다. 동네말쟁이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날마다 출퇴근하는 식으로 아침 일찍 큼지막한 가죽가방을 한 쪽 어깨에 둘러메고 나가면 저녁 늦게 돌아온다 하고, 집에는 50초반의 마누라와 열 칠팔 세 되는 딸이 하루 종일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데, 그 딸애는 그 마누라가 데리고 들어온 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딸애가 인물이 출중하다는 것이다. 이에 동네젊은 층들의 관심이 끌리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읍내 농업학교 2학년인 구열이를 비롯한 친구들 셋이 하루는 모의를 했다. “야, 니들두 저 이빨쟁이네 딸애 얼굴 못 봤지?” “너두 못 봤잖어?” “그려, 그러니까 오늘 한번 보자.” “어떻게?” “걔네 집에 쳐들어가는 거야.” “쳐들어간다구? 이사 오면서 철대문으로 하고 날마다 문을 꼭꼭 걸어 잠근다던데 담장도 높이고.” “월담하지 뭐. 우리들 학교 지각하면 월담하잖어 학교 담장이 훨씬 더 높을 걸?” “낮에?” “낮엔 동네어른들 눈이 많어. 이따 밤에 하자. 마침 아까 그 여자 엄니가 옷 차려입구 출타했다는겨 내일 온다면서. 좋은 기회 아녀?” “너 어떻게 그런 것까지 다 조사했냐. 그런데 밤에 들어가서 어떻게 하자는겨?” “도대체 얼마나 이쁜가 보구 살살 꼬셔서 같이 놀자구 하지 뭐.” “떼루 몰려가서?” “왜, 캥기냐. 그럼 나 혼자 월담하라구?” “그래, 그게 좋겠다. 우리들은 망보고 있을게.” “좋아!” 구열인 장담한대로 그날 한밤중에 이빨쟁이네 담을 넘었다. 그리고 살살 그 여자애가 있을 건넌방 바깥창문 아래로 기어갔다. 이빨쟁인 안방에 있을 거였다. 까치발을 하고 창문을 톡톡 두드려 보았다. 아무 반응이 없다. 조금 더 세게 두드려 보았다. 그래도 반응이 없어 다시 두드려 보려는데 그때 갑자기 드르륵 건넌방 문 여는 소리가 크게 들리면서 동시에 ‘누구얏!’ 하는 남정네의 칼날 소리가 확 달려든다. 이빨쟁이다. 구열인 담장 쪽으로 냅다 튀었으나 손전등 비추며 잠옷 바람으로 쫓아온 이빨쟁이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이 동네 학생입니다 도둑놈 아녀요.” 개개빌며 인적사항을 불곤 간신히 풀려났다. 그런데 이틀 후 구열인 학교교무실로 불려갔다. “너, 동네처녀방에 침입했다며. 그 아버지 말로는 강간미수라는데 사실여?” “예?” 학교뿐만 아니라 동네에도 소문이 쫙 퍼졌다. 구열이 그놈 천하에 죽일놈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사실을 토로해도 엄연한 심야 처녀집 침입의 현실 앞에선 통하지 않았다. 구열인 더 이상 이겨내질 못하고 학교퇴학 당하기 전, 경찰이 잡으러 오기 전, 동네서 쫒겨나기 전에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하곤 야반에 동네를 떠나고 말았다.
 그런데 1년쯤 지났을까, 동네에 또 하나의 대사건이 일어났다. 이번엔 그 이빨쟁이 집에서다. 그의 집 대문 앞 두엄더미 속에서 아직 탯줄도 떨어지지 않은 신생아의 주검이 발견된 것이다.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경찰이 이빨쟁이를 연행해 갔다. 그게 이빨쟁이가 유기한 것이고 그 신생아는 이빨쟁이와 그 의붓딸 사이에서 나온 자식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또 아연한 일은, 그 의붓딸은 그길로 집을 나가 행방이 묘연하다는데 그 어미는 그 남편인 이빨쟁이의 옥바라지를 하기 위해 교도소 인근으로 집을 옮겼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동네에선 구열의 가출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무슨 소용이랴. 이때는 땅을 치며 자식의 결백을 믿었던 구열의 부모도 세상을 뜬 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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