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상임이사)

스마트폰이 약정기간이 끝나자마자 예정됐었다는 듯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어플을 여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카카오톡도 잘 되지 않았다. 처음엔 짜증이 났었는데, 문득 이참에 스마트폰으로부터 벗어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 기기로 바꾸지 않고 버텨보기로 했다. 기본메뉴인 음성 전화는 되니까, SNS를 접고 과거처럼 아날로그로 살아보기로 했다. 무료문자인 카카오톡은 물론 가끔씩 재미삼아 들여다 보던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트위터, 밴드, 라인, 유투브 등....사이버 세상의 모든 것에 문을 닫았다.

처음엔 답답했다. 습관의 힘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기기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남들이 스마트폰을 만지면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만졌다. 어느새 나도 스마트폰에 중독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멀어지기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것. 그룹을 만들어 소통하던 친구들의 소식도 궁금했고, 이러다 왕따가 되는 것은 아닌가 짐짓 걱정도 되었지만, 무엇보다 적응하기 힘든 것은 문자로 소통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연락할 일은 음성통화나 메일을 이용했다. 그러다보니 나를 찾는 사람들도 전화를 해왔다. 내가 아는 K교수는 아예 핸드폰이 없다. 그러나 그와 연락 못하는 사람들은 없다. 필요하면 연구실로 전화를 하거나 메일을 보내면 소통이 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내 형편은 뻥 뚫린 라인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스마트폰을 멀리 하면서 좋은 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카톡이며 문자메시지며 페이스북 등 시도때도 없이 알람을 울려대던 스마트폰이 조용해지자 심리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보거나 안보거나 크게 중요하지 않은 내용들이지만, 막상 알람이 울리면 열어 보아야 직성이 풀리던 궁금증과 조급함이 사라졌고 문자 수다를 통한 번잡함이 줄면서 늦은 밤까지 책을 읽어도 집중이 잘 됐다.

또 음성 전화를 주로 이용하면서 시간도 절약이 됐다. 빠르게 말로 주고 받으면 전달이 정확해지고, 문자처럼 답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게다가 서로의 음성을 들으며 감정을 교류하고 따뜻한 정을 느끼니, 사람사는 맛을 느낄 수 있는 소통방법이다.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이 전세계를 바꾸고 있다.

그 작은 기기 안에 없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하고, 그룹을 만들어 카페처럼 운영하고, 책을 읽고, 게임을 하고,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는다.

하루종일 혼자 놀아도 놀거리가 무궁무진하고 심심하지 않다.

예전엔 이렇게 모바일에 빠진 아이들을 중독이라고 나무랐지만, 이제는 아이 어른 남녀노소 모두가 중독이다. 버스를 타면 버스 안이, 지하철을 타면 지하철 안이, 모두가 스마트폰에 빠져있다. 모임에 나가면 서로 인사만 나눈 뒤 어느새 각자 자기 스마트폰을 꺼내놓고 있다. 어느 땐 서로 마주 앉아서도 대화대신 카톡으로 문자를 주고 받는다. 웃기는 일이다. 빠져도 너무 푹 빠졌다.

어른들이 스마트폰을 장난감처럼 갖고 즐기게 된 데는 국내커뮤니케이션 시장을 장악한 카카오톡이 한몫을 한다. 국내의 한 벤처회사가 만든 이 콘텐츠는 무료문자라는 구미당기는 서비스를 통해 전세계 8000명이 가입하고 국내 인구만 3500만명이 가입한 매머드 플랫폼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용자가 하루 평균 43분 넘게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난 카톡이 불러온 가장 큰 변화는 말보다 문자대화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톡 대화는 조심할 일이다. 얼마전 탤런트 박시후가 성추행 문제를 둘러싸고 주고받은 대화라든가, 직장내 여성 동료에게 카톡으로 추파를 던진 공무원의 징계에서 카톡의 대화들이 증거물로 활용되었다. 말은 특정한 시공간에 머물다 허공으로 사라지지만, 카톡의 기록은 나와 상대, 서버 등 3곳에 원본이 통째로 기록된다. 무서운 일이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산지 3개월째. 겨우 그 생활에 익숙해지려는데 스마트폰이 완전히 망가져 새 기기를 구입해야 했다. 스마트폰을 사자마자 다시 카톡 알람이 울리고 페이스북 신호음이 들린다. 어쩌나.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게 되려나. 망설이다가 스마트폰의 화면을 연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