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자 전 청주 교동초 교사

 요즘 슬로시티나 올레길 또는 옛길을 찾아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심지어 음식도 슬로푸드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는 시대다.

자연의 품속에서 느리게 걷고자 새로운 길을 향해 떠나는 여행은 늘 설렘이 앞선다. 꽉 짜여진 일상을 훌훌 털고 가벼운 마음으로 피톤치드에 풍덩 빠져보기 위해 초여름의 아침에 머나먼 남쪽 땅으로 떠났다.

정남진 장흥 편백 숲 입구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차에서 내려 편백 숲 우드랜드 안내자의 설명을 들었다. 장애우들도 정상까지 오를 수 있게 만들어진 길이라 하여 궁금했다.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은 후 즐거운 마음으로 건강을 위하여 숲길로 향했다.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서니 상큼한 향이 물씬 풍겼다. 아름드리 편백나무가 줄을 지어 하늘 높이 쭉쭉 벋어 마치 키다리 병정들이 사열하는 것만 같다.

수목 중에서 피톤치드 함유량이 가장 높다는 편백나무숲이다. 피톤치드를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살균작용도 이루어진다는 학설이 있다. 또한 아토피나 천식 등 호흡기 질환에 음이온과 더불어 최적의 자연치유로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한다.

가슴을 활짝 열고 심호흡을 해서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어 마시니 기분이 상쾌했다. 느리게 걷고 싶은 숲에 들어서자 삼림욕으로 몸과 마음을 적시는 순간이다. 편백나무숲 우드랜드가 널리 알려져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숲길을 오르내리고 있다.

숲속 여기저기에 있는 쉼터에 누워 있거나 한가로이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보인다. 나도 여유를 부려 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어 정상을 향해 걸었다.

울창한 숲에서 풍겨오는 나무 향내를 맡는 이 순간 여기에 서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신선한 공기를 흠뻑 마시며 테크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들숨 3초, 날숨 7초, 한숨 10초’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참 많은 것을 잊고 산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문구다.

억불산은 518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자락에 100ha인 20만평에 40~50년생 이상의 아름드리 편백나무숲을 조성해 놓았다. 이 산은 국유림으로 장흥군에서 관리하는 숲으로 ‘말레길’이라 칭한다.

‘말레’라는 말은 전남 장흥지역의 ‘대청’이라는 옛말이라고 한다. ‘대청마루’란 한옥에서 방과 방 사이에 있는 마루다. 이 넓은 장소는 가족의 이해와 소통으로 공유하는 공간이다. 정남진 장흥 편백 숲 우드랜드의 말레 길은 휴양의 본질로 행복재충전과 소통의 중심이 되고자하는 뜻이 담겼다고 한다.

말레 길은 정상까지 약 3.8km 구간을 흙 한 번 밟지 않고 오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계단이 없는 나무갑판 테크 길이다. 명품 테마길인 말레길에서는 아이젠과 스틱은 절대로 사용할 수 없고 맨발로 걸을 수 있게 만들어진 길이다.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오르는 길이 완만해서 남녀노소뿐만 아니라 휠체어를 탄 장애우들도 오를 수 있도록 계단없이 조성되어 있다. 울창한 편백나무 숲과 톱밥을 깔아 놓아 부드럽고 폭신한 길을 걷는 감촉이 너무 좋다.

이 숲속을 거닐고 있으면 피톤치드로 인해서 내 몸속에 있는 찌든 때와 독소가 다 빠져나올 것 같다.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자연의 품이다.

비비에코토피아 (풍욕장) 입구 좌우측에는 나무로 깎아 만들어 우뚝 세워놓은 천하대장군처럼 늠름하게 지키고 서 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상과 목마를 태운 남성상이다. 편백의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장소라는 뜻이 담긴 조각상이다. 종이옷을 입고 누드 삼림욕을 하는 이곳에서 더운 여름날 한 번 체험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체험장으로는 목재문화체험관, 목공 및 생태건축 체험장, 숲 치유의 장, 편백 소금집, 한옥펜션, 족욕장 등이 있다. 또다시 찾아와 여유로운 마음으로 느리게 뚜벅뚜벅 걸으며 체험도 할 날을 기대 해 본다.

정상에서 내려올 때는 온 몸에 땀이 촉촉이 배어 나왔다. 어느 시인의 시귀처럼 올라 갈 때 못 보던 것을 내리막길에서 보았다는 말이 실감난다.

여가라든가 휴식 같은 것은 아예 사치라고 생각했던 것이 내 젊은 날의 삶이었다. 지난날 먹고 살기 바빠 여행을 간다든가 가족 나들이 같은 것은 엄두도 못했다. 뒤돌아 볼 마음의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분주하게 달려온 삶이 힘들고 피곤하게 살아 온 버거운 생활이었다.

느리면 무언가 손해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르고 성급하게 서두르며 사회의 변화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 온 세월이다.

이제 내리막길에서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떠나는 길여행을 찾아 느리고도 한가롭게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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