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폐암으로 별세..통기타 음악 산파 역할

30일 폐암으로 별세한 이종환(76)은 시대를 풍미한 명 DJ이자 통기타 음악의 산실 '쉘부르'를 탄생시킨 주역이었다.

음악다방 디쉐네의 DJ로 활동하다 1964년 MBC 라디오 PD로 입사한 이종환은 1970년대 '별이 빛나는 밤에'와 1980년대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DJ로 활약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여성시대'까지 진행하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그는 1989년 돌연 미국행을 택했다.

이후 미주 한인방송 사장직까지 맡았던 그는 1992년 귀국해 MBC FM '이종환의 밤으로의 초대'로 방송에 복귀했다.

이후 '이종환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이종환의 음악살롱' 등으로 과거의 명성을 재확인했다. 1996년에는 20년 동안 MBC 라디오를 진행한 DJ에게 주는 골든마우스 상을 최초로 수상했다.

해박한 음악 지식과 특유의 소탈한 입담으로 많은 청취자를 끌어모으며 김광한, 김기덕과 함께 '3대 DJ'로 불리기도 했다.

최유라와 함께 1995-2002년 진행한 '지금은 라디오 시대'는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군림했다.

최유라는 "내게는 아버지 같이 잘해주셨던 분이었다"며 "나와 같은 후배에게도 절대 함부로 대하지 않았던 선배"라고 고인을 회고했다.

'지금은 라디오 시대'를 이종환, 최유라와 함께 시작한 정찬형 당시 PD(현 MBC라디오국 부국장)는 "전설이 떠나갔다"며 안타까워했다.

정찬형 부국장은 "카리스마 있으면서도 위트와 유머가 풍부했다. 전달력뿐 아니라 리액션이 워낙 좋아서 재미있는 사연이 나오면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었다"며 "음악 지식이 해박할 뿐 아니라 목소리 자체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종환은 1970년대 음악감상실 쉘부르를 만들며 대중음악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1973년 듀오 쉐그린(이태원, 전언수)과 함께 종로 2가에 쉘부르를 연 이종환은 가난한 음악인들에게 무대를 마련해주고, 경제적인 지원을 하면서 가수들에게 '대장'으로 불렸다.

쉘부르에서 출발한 소위 이종환 사단에는 쉐그린, 어니언스, 김세화, 위일청, 남궁옥분, 신계행, 양하영, 허참, 주병진 등이 있다.

1975년 쉘부르가 명동으로 옮긴 후에도 그의 이러한 행보는 계속됐다. MBC FM '별이 빛나는 밤에' 진행을 병행하며 쉘부르에서 통기타 가수들의 무대를 마련했다.

쉐그린의 이태원은 "통기타 가수들이 노래할 곳이 없던 시절 무대를 마련해 준 분이었다"며 "사업이 아니라 음악을 정말 사랑했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방송인으로서 음악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던 그는 레코드 제작에 관여했고, 외국곡의 번안 작업에도 참여했다.

이장희는 1971년 이종환의 권유로 1집 '겨울이야기'를 내면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이문세 역시 1985년 3집 앨범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발표했을 당시 이종환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디스크쇼' 공개방송 무대에 설 수 있었다.

이문세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이종환을 '스승이자 방송 멘토'로 지칭하며 "몇일 전 통화했을 때 병세가 악화했을 텐데 제게 웃으시며 이번 공연 꼭 가서 보겠다 하셨던, 쇠잔한 목소리가 지금 또렷한데 더 큰 목소리로 노래할께요 아저씨∼"라는 글을 올려 고인을 추모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활발하게 방송활동을 했던 이종환은 이후 돌출 행동과 음주 방송 파문으로 마이크를 놓아야 했다.

이종환은 2002년 '지금은 라디오 시대'에서 자신을 비난한 글을 올린 청취자에게 전화해 폭언하는 물의를 일으킨 뒤 DJ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듬해 7월에는 MBC FM 4U '이종환의 음악살롱'에서도 음주 방송으로 DJ를 그만둬야 했다.

2005년 4월 tbs FM '이종환의 마이웨이'로 방송에 복귀한 그는 지난해 11월 건강상의 이유로 방송에서 하차했다.

유족측은 "투병 중에도 옛날 방송하던 이야기를 종종 했다"며 "특별한 말씀은 없었지만 방송에 대한 마음은 항상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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