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오기도 전에 전력대란이란 국가적 재앙이 우려된다. 올해 전력예비율이 안정선인 10%를 밑돈 날은 벌써 55일이나 된다. 사흘에 한 번 꼴이다. 가뜩이나 전력공급이 빠듯한 마당에 위조부품이 들어간 원전들이 잇따라 가동을 중단했으니 전력수급에 비상이 걸리는 건 당연하다.
신고리 원전 1·2·3·4호기와 신월성 1·2호기 원자로에 설치된 위조 부품은 제어케이블로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원자로의 냉각 등 안전계통에 동작 신호를 보내는 안전 설비이다. 원전 안전과 직결되는 중요 부품까지 위조 제품이 사용됐다니 충격적이다. 현재 가동 중이거나 정비 중인 원자로는 물론 건설 중인 원자로에까지 위조 부품이 사용됐다니 가히 우리 원전의 안전시스템 전반에 구멍이 뚫렸다고 할 만 하다. 도대체 원전 비리의 끝은 어디까지 일지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것으로 드러난 신고리 2호기와 신월성 1호기가 29일부터 가동을 중단하면서 각각 100만kw씩 200만kw의 전력공급이 단숨에 줄어들었다. 이들 2기를 포함해 총 11기의 원전이 정비와 위조부품 교체를 위해 한동안 멈춰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평년기온을 웃도는 무더위가 예보된 올 여름에 전력수요가 치솟아 최악의 정전 사태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벌써부터 커지고 있다.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여름철에 전력공급을 극대화해야 할 원전당국이 위조부품 때문에 원자력 발전소 가동을 멈추는 건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위조부품 문제가 불거진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해도 여러 개 원전에서 비슷한 문제가 드러났는데도 그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다가 여름을 코앞에 두고 같은 문제로 가동을 중단해야 하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게다가 이번에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것으로 드러난 제어케이블은 원전의 '신경계'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이다. 자칫 대형 원전사고를 초래할 수 있는 불량 케이블이 이미 가동 중인 원전은 물론 건설 중인 원전에까지 사용된 것이다. 그나마 내부 제보가 없었다면 이런 충격적인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원전 부품의 성능을 조사하는 검증기관들에 대한 견제장치가 사실상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20기가 넘는 원전을 가동 중인 나라에서 엉터리 검증이 이뤄져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한다니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다. 이런 식이라면 대형 원전 사고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사태는 관련회사와 책임자 몇 명 고발 처리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책임자 처벌도 중요하지만 검증기관이 서류를 조작해도 속수무책인 안전시스템 자체를 근본적으로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력당국의 안일한 대응은 최근 밀양 송전탑 공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새 원전이 건설되면 그에 맞춰 송전설비까지 세워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주민들과의 갈등은 예상된 일이고 어떻게든 풀었어야 할 문제다. 그런 일을 7년이나 끌다가 연말까지 공사를 마쳐야 한다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 하다니 도대체 그동안 뭐했느냐는 지적이 안 나올 리 없다. 그런 중에 한전 고위간부가 '주민들이 세뇌됐다' '원전 수출하려면 공사를 강행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얘기했다니 한심하다. 그런 대응으로는 문제를 풀기는커녕 꼬이게만 할 뿐이다. 이처럼 나사가 풀린 듯한 전력당국의 마인드와 시스템을 이번 기회에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 당장 원전 위조부품 사태로 거의 3조원 가까운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돈이다. 그러고서도 애꿎은 국민은 블랙아웃을 걱정하며 한여름 무더위를 견뎌야 할 판이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만으로도 전력당국에 대한 대대적인 문책과 개편은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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