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일 (극동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

  지난 달 24일 월성원자력발전소를 다녀왔다. 원자력 안전문화 증진과 관련한 현장의 소리를 듣기 위한 목적이었다. 최근 국내에서도 자주 사용되고 있는 원자력 안전문화란 말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제시하기 시작한 표현이다. 기술적인 대책만으로는 원자력 안전이 담보될 수 없고 원자력 종사자들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문화가 확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원전 23기를 보유한 세계 5위의 원자력 강국인 우리나라에서도 원자력 안전문화 증진은 가장 중요한 정책목표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이날 원전 직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분위기가 다소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원자력 안전문화가 중요하고 이를 증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겠느냐며 상당히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직원들도 있었다. 이들의 사기가 떨어진 탓이려니 생각했다. 작년 2월 불거진 고리원전 전력공급 중단사고에다 원전부품 납품비리가 연이어 적발되면서 여론의 뭇매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방문 나흘 뒤인 지난달 28일 신고리원전 1~4호기와 신월성원전 1, 2호기 원자로에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불량부품이 사용됐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적발된 불량부품은 원전 사고가 발생할 경우 원자로의 냉각과 방사선 누출을 막는 안전설비에 동작신호를 전달하는 제어케이블이다. 원자로 1기당 약 5km에 이르는 이 케이블이 제 기능을 못하면 핵연료 냉각, 방사성 물질 차단 등이 이뤄지지 않아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핵심 부품이다.
  아마도 우리가 방문했을 시점에는 이 사실이 이미 발전소 내에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공식발표가 나기 전까지 모두가 쉬쉬하고 있었을 텐데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외부 인사들이 찾아갔으니 뜨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터뷰 대상자들에게는 입조심 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을 것이다.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인데 우리는 안전문화 증진 운운하며 한가롭게 고담준론을 일삼았으니 자신들도 모르게 그런 반응이 나왔을 것이다.
  답답하기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 원자력을 대체할만한 대안이 아직 없다. 원자력의 가공할 만한 위력은 익히 알고 있지만 잘만 관리하면 이만큼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에너지원을 찾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원자력발전은 불가피한 선택이고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떻게 하면 원자력 안전문화의 확산을 통해서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시킬 것이냐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작년에도 원전부품 납품업체의 위조부품 공급이 대거 적발된 바 있다. 하지만 그때는 납품업체가 품질검사를 한 것처럼 꾸민 것이지만 이번에는 부품의 검증을 담당하는 시험기관이 시험성적서를 조작하면서 직접 개입했다. 이런 경우는 서류 대조만으로는 적발이 불가능하다. 이번에 내부의 제보가 없었다면 올여름 원활한 전력공급을 위해 대거 가동되던 원자로에서 만에 하나 불량부품이 말썽을 일으켜 엄청난 재앙이 닥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정부에서 뒤늦게나마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철저한 조사를 통해 원전 비리의 구조적 문제를 파헤치겠다고 나섰지만 이번 사건이 미칠 파장은 지금도 엄청나다.
  불량부품이 사용된 것으로 드러난 신고리 2호기와 신월성 1호기의 가동이 갑자기 중단되면서 전력 수급에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절전을 호소하고 있지만 추가로 발전소 1기라도 가동이 중단되면 또 다시 초유의 블랙아웃 사태를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벌써부터 땡볕인데 올여름 국민들은 이래저래 열불 나게 생겼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