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길(논설위원, 소설가)

 독일 슈투트가르트 검찰이 93세의 나치전범 용의자 한스 리프시스의 범죄사실을 조사 중이란다. 2차 대전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 교도관으로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혐의 때문이라는 것이다. 독일은 이에 앞서 폴란드 시비보르 수용소 교도관으로 근무했던 존 데마뉴크(91)에게 5년형을 선고했다. 데마뉴크는 비록 항소심 중에 사망했지만, 전범자를 끝까지 추적, 죄를 물음으로써 과오를 속죄 하려는 독일인들의 진심이 새롭게 읽히는 대목이다.
 학살당한 유대인 영령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한 독일 총리의 일화는 이미 널리 회자 된 얘기고, 이제까지 처벌한 많은 전범자들 외에, 아직도 50여 명의 혐의자를 수사대상에 올려놓고 추적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독일정부는 1952년 이후 700억 달러(약 79조원)의 배상금을 피해 유대인들에게 지불해 왔다. 최근에는 10억 달러를 추가로 지급하기로 했을 뿐 아니라, 홀로코스트 당시 어린이로서 부모의 학살현장을 목격한 생존자들에 대한 배상방안까지 협의할 것이란다. 학살에 간접적으로 참여한 자들까지 색출 처벌하고, 생존자들의 정신적 피해보상에 까지 진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독일과 동질의 전범국인 일본의 행적은 극단의 대조를 이룬다.
 패전 후 독일은 동서로 분할, 한동안 전승국의 점령통치를 받고 오랫동안 분단의 고통을 겪었지만, 일본은 분할은커녕, ‘천황’제 국체를 유지 한 채, 미국의 통치 아래 별다른 고통 없이 국권회복의 길을 걸었다. 일본이 받아야할 분할, 분단의 고통을 엉뚱한 우리가 당한 것이고, 그 고통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일제 강압기 36 년간 당한 고통에, 종전 후유증까지 떠안은 우리로서는 통분할 일이지만, 일본은 여전히 오만하고 비열하다. 후안무치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던 시절의 군국주의 회귀를 꿈꾸며 교활한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전쟁 중, 점령지에서 저지른 온갖 만행을 부인하다 못해 왜곡, 미화에 광분하고 있다. 세계 여론이나 피해 당사국들의 항의, 자국의 정치정세에 따라 과거의 죄과를 부인하거나 가식적인 언어유희로 사죄를 가장해 왔을 뿐, 책임 있고 진정성 있는 조치를 회피해 왔다.      
 ‘강한 일본’을 내세운 아베정권이 들어 선 이후, 이제는 지난날의 가식적인 사죄마저 부정하고 전쟁도발의 책임, 침략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우파정객이나 극우단체들이 합작으로 망언망동 ‘씨리즈’를 엮어내고 있다. 그 선두에 아베 총리와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이 있다.   종전 후 장기 집권한 자민당이, 잠시 민주당에 내줬던 정권을 탈환, 아베를 총리로 앉힌 뒤, 그들이 가고자하는 길은 자명하다. 오는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우파 유권자들의 표몰이로 법안통과에 유리한 과반의석을 확보하고, 평화헌법을 개정해 재무장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이는 ’강한 일본‘을 내세우며 총리자리를 꿈꾸던 당시부터 아베와 자민당이 입을 맞춰 주장한 것이니,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우경유권자들의 표몰이를 위한 아베의 행각은 전쟁범죄의 부정, 망언에만 그치지 않는다. 종전 후 도쿄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전범자로 규정, 처형 된 자들이 안치 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일시적 경기부양을 위해 무진장 돈을 푸는 편법을 쓰는가하면, 북한에 특사(이지마 이사오)를 보내 납북일본인송환을 꾀하고 있다. 표를 얻기 위한 술수지만, 이는 전쟁 피해국의 분노를 촉발하고, 국제경제, 6자회담에 재 뿌리고 초(醋) 치는 일이다.
 헌법을 개정, 재무장한 정규군이 욱일승천기를 펄럭이며 영토분쟁국(중국. 러시아)과 전쟁을 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또 다른 인접국이나 우리 땅에 다시 침략의 마수를 뻗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임진왜란이나 한일합방, 만주침략의 서곡은 선전포고가 아닌, ‘길을 빌리자’거나 ‘보호’ 또는 ‘분리 독립’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이었다. 자위대의 재무장 명분도 ‘세계평화에 기여’하겠다는 것이지만, 신뢰를 호떡 뒤집듯 하는 일본의 양심을 어찌 믿겠는가? 자위대 재무장이 현실화 될 경우, 세계평화는 동아시아에서부터 깨질지도 모른다.
 ‘다테마에(표면언행)’와 ‘혼네(본심)’는, 겉으로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뒤로는 다른 ‘꿍심’을 품고 있는 일본인의 표리부동을 상징하는 것이다. 외국인, 외국정부를 황당하게 하는 대목이고 나아가 일본인과 일본의 고립을 부를 수도 있는 일이다. ‘강한 일본’보다 ‘정직한 일본’이 먼저고, 그 길은 표리부동한 ‘술수’보다 ‘신뢰’다. 아직도 끌어안고 있는 ‘전범국’오명부터 씻어야 하고, 그러자면 ‘독일의 양심’을 배워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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