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소설가

 방차돌 옹(翁)은 술은 오직 막걸리만 마신다. 지금은 술 양이 좀 줄었지만 10여 년 전인 70대만 해도 아침술을 꼭 마셨으며, 좀 더 젊었을 적인 60대엔 막걸리를 마신 후 술국(술집에서 안주로 내놓는 된장국)을 내자한테 끓여 달라 하여 술국밥(밥을 만 술국)을 자주 먹었다. 그 전엔 집에서 술을 담가 술구더기(걸러놓은 술에 뜬 밥알)가 둥둥 떠 있는 막 걸러낸 탁주를 주로 마셨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그 전에도 집에서 혼자 마셨지 주당(酒黨)들과 어울려 술타령을 하지도 않고 술독이 올라 코끝이 빨갛게 되는 주독코도 아녔으며 술기운이 오른 뒤라도 그 어느 누구에게 주정을 부리지 않고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가지는 버릇을 지켰다. 그가 이렇게 막걸리와 가까이 하게 된 건 20대 후반에 같은 또래인 양배달을 알고부터다. 그 전엔 일절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당시 그의 환경?처지 때문이다.

 그가 여섯 살 때 그의 외삼촌이라는 사람이 마을 방앗간 집에 무조건 맡겨 놓고 가버렸다는 것인데 애가 약고 밝아서 주인이 시키는 일이며 일머리를 꾀부리지 않고 영리하게 잘할 뿐만 아니라 기운도 있어서 열서너 살을 전후해서는 방아거리도 거뜬거뜬 다루고 소달구지도 요리 있게 곧잘 몰더니 20도 되기 전엔 온 방앗간 일을 주인 대신 관장함에 이르렀다. 이러하니 그간 술 배울 틈도 없으려니와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알아 우정 멀리 했던 것이다. 이균정이란 성과 이름이 어엿하게 있는 그가 ‘방차돌’이라 불리는 것은 ‘방앗간 집에 있는 차돌멩이 같이 단단하고 야문 아이’라는 걸 동네사람들이 따로 줄여서 불렀기 때문이다.   방차돌이가 양배달을 처음 만난 건 군대 갔다 와서 26살 때다. 그가 방아거리를 실러 소달구지를 끌고 동구 밖 냇가에 다다랐을 때다. 저만치 맞은편에서 외나무다리로 자전거 한 대가 오고 있었다. 그냥 자전거가 아니다. 사람이 탄 양쪽으로 한 말들이 나무통을 두 개씩 달고서였다. 보아하니 양조장 술 배달꾼 양배달이었다. 그런데 그 양배달이가 그냥 달려오는 속도로 외나무다리를 올라타는 거였다. 아니, 아니? 그러나 양배달은 아무렇지도 않은 양 평지처럼 앞만 보고 달린다. 저럴 수가! 심약한 사람은 맨몸으로도 건너지 못한다는 폭 좁은 외나무다리다. 방차돌은 소달구지는 그대로 놔둔 채 그에게로 뛰어갔다. “저기요!” 양배달이 멈춘다. “나 저 아랫말 방앗간 사람이오.” “압니다.” “그러십니까. 나도 댁을 벌써부터 보고 들어 압니다. 근데 자전거 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군요. 놀랐습니다.” “댁도 저렇게 제법 깊은 냇물을 달구지 타고 건너지 않습니까. 그것도 아무나 못하는 일이지요.” 그날 방차돌은 양배달의 본 이름이 김삼희라는 것과 그도 조실부모해 10살 때 경기도 땅에서 흘러 들어와 양조장에서 술 배달을 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양배달이라는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이 동네 저 동네 큰일이며 농번기에 술 배달을 해온지 꽤 오래여서 동네에선 본이름을 모르니 그냥 ‘양조장 배달꾼’을 줄인 것이다.
 그 얼마 후 방차돌은 동네 상가에 술이 떨어져 한밤중에 양조장으로 술심부름을 갔다. 문을 두드리니 한참 만에 눈을 비비며 양배달이 나왔다. 대단히 반가워했다. 한데 돌아올 때 그는 막무가내로 따라나섰고 그래서 술 한 통 얹은 지게를 교대로 짊어지며 그 외나무다리를 건너와 지게를 받쳐 놓았다. 그때 양배달이 술통을 기울이더니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방차돌에게도 권하는 거였다. 둘은 씨익 서로 웃어 보이며 연거푸 몇 모금씩을 더 마셨다. 그러기를 몇 번 더 몇 번 더. 인제 마침내 둘은 횡설수설하게 되고 방차돌은 정신이 아뜩해졌다. 그리곤 모른다. 이튿날 그는 주인에게 불려갔다. 지난밤에 양배달이 업고 왔다는 것과 반 말 정도도 안 되는 술통을 양배달이 상가에 배달하고 가버리는 바람에 상가 밤샘하는 술꾼들이 소란을 피웠다고 했다.  그날 이후 양배달은 자주 방앗간에 들렀다. 동네와 이웃마을에 배달 왔다며 들르는데 어떤 땐 양조용 고두밥을 가져 오기도 했다. 그랬는데 하루는 방차돌이 한창 바쁘게 일하는 중에 양배달이 왔다. 그리곤 도와준다며 방아거리자루를 들고 맷돌 위로 팔을 올렸다. 그 순간 그의 팔뚝 옷자락이 아차 그만 피대에 감기고 말았다. 이럴 수가! 눈이 빠져도 다행이라고 다행히도 팔을 절단하지는 않게 됐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팔은 아무 힘 못 쓰는 곰배팔이 되고 말았다. 하여 이제 그는 술 배달을 하지 못하게 되고 곧 경기도 고향에서 사람이 와 데리고 갔다.

 그때부터 방차돌은 막걸리 잔을 자주 들게 되고 양배달이 자꾸 그리워질수록 그 양과 횟수도 점점 늘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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