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인 재국씨가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독립 언론인 뉴스타파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자료를 받아 함께 진행하는 '조세피난처 프로젝트'의 한국인 명단에 재국씨가 포함돼있다는 발표는 한마디로 충격이다.
재국씨가 2004년 7월 '블루 아도니스'라는 서류상 법인을 만들었고 이 회사 이름으로 싱가포르 소재 은행에 계좌를 운영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발표의 요지다. 계좌의 성격이나 규모, 불법 여부에 대해선 확인된 게 없다.
그러나 페이퍼컴퍼니 설립 소식만으로도 많은 국민이 실망과 분노를 가져다주기에 충분하다.
재국씨는 1990년 시공사를 설립해 굴지의 출판사로 키운 기업가다. 그렇기에 사업 때문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엔 아버지와도 무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전 전대통령은 비자금 축재 혐의로 2205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고 1672억원을 미납했다. 앞서 그의 동생인 재용씨는 외할아버지로 받았다는 자금 중 73억원이 아버지의 비자금계좌에서 넘겨받은 돈이라는 판결을 2004년에 받은 바 있다.
이는 비자금을 숨기려고 재국씨가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배경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이번 발표를 비자금 사건의 연장선에서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더욱이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시효는 오는 10월 끝난다.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이 페이퍼컴퍼니로 유입됐을 수 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비자금의 불법 은닉 또는 증여라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의혹에 대한 입장을 가장 먼저 밝혀야 할 주체는 재국씨다. 국민적 관심사가 된 만큼 개인 해명과는 별개로 검찰과 국세청 등 당국의 철저한 확인이 뒤따라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일벌백계 대상이다.
우리 사회의 도덕적 가치를 바닥에 떨어뜨린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정당국의 확인 노력은 이 사례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뉴스타파와 ICIJ는 버진아일랜드 같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한국인이 245명이라고 했고, 지난 22일부터 네 차례에 걸친 발표에선 극히 일부만 공개했다.
재벌급 기업의 사주와 임원을 시작으로 제기된 조세피난처 탈세 의혹은 문화계, 교육계 인사까지 거명됐지만 해명은 제각각이다. 개중에는 범의가 없었던 사람도 있겠지만 국민들의 궁금증은 증폭되고 있다.
정부가 이미 지하경제 양성화의 한 축으로 역외 탈세 척결을 내세운 만큼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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