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침례신학대 교수)

사람의 일 이야기하기는 자주 열쩍다. 어때야 한다는 당위를 포함해서 우리 사는 일이라는게 몇마디 말로 하기는 난망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존재를 규명하는 일이 그러하듯 사람살이는 명료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 사이의 일은 신비하기까지 하도록 무쌍한데,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바뀌어 가는 존재이기 때문일 수 있으리라. 고마우면서 야속하고, 사랑하면서 미워하는 일이 모든 관계, 가족 관계에서도 생겨난다. 자식이 살아있는 부모에게는 받지 못한 것을 떠올리다가  돌아가신 뒤는 해드리지 못한 걸 떠올리듯, 어미 노릇도 자식을 사랑하면서 미워도 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때 어느 부분을 이야기 할까, 가족이라는 관계로 살아가는 일을 이야기하자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사라진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사람 사는 일, 부모 자녀로 사는 일을 돌아보게 했다면, 박범신의 ‘소금’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아버지로 사는 일을 이야기 한다. 아버지, 아버지가 되는 일, 아버지를 갖는 일, 아버지를 생각하는 일, 아버지의 역할을 생각해보는 그 일.

 소설 [소금]에서 박범신은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자신의 아버지 노릇을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성찰하고 싶어한 것 같다. 그 바탕에서 본다면 아버지는 관계가 아니라 역할로 고려된다고, 관계가 사라져 버리고 기능만 남은 관계의 타락에 대해. 고향을 떠나 오래 살다가 나이 들어 돌아온 논산의 자연을 배경 삼은 소설에서 사람, 그 중에서도 남자가 생의 아주 많은 시기를 보내게 되는 아버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금은 관계를 상징하는 객관적 상관물일 것이다. 녹아져 버리는 소금처럼 자신을 녹여서 무엇인가를 해내는 존재로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소금이 어떤 맛이거나 더 그 맛을 더 깊어지게 하듯 자신의 흔적은 가족 구성원들의 삶이 더 깊어지고 풍부해 지는데서 찾아보게 될 것이다. 

  소설 [소금]은 아버지를 신화로 만들지 않는다는 미덕을 짚어야 할 것 같다. 결혼을 하면 당연한 듯 그 전에 품던 꿈이나 미련조차 풀풀 내던지고 분연히 가족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확신하는 그 일, 당연히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자원을 내놓아야 하는 존재로 들씌워 왔던 그 일이 폭력일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아버지의 신화 벗기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설은 가족에게 희망과 미래가 되려고 어린 시절부터 식구들과 떨어져 혼자 지내야 했던 인물 선명우의 삶을 그려낸다. 핏줄을 중심으로 하는 인물들의 구도를 중심으로 핏줄이 섞이지 않은 관계이지만 우연히 만나 특별한 가족이 되는 인물들, 아버지가 사라지고 난 뒤 세상의 무서움을 알게 된 딸, 아버지 희생으로 컸지만 아버지가 되기 두려워하는 시인인 ‘나’까지 인물들은 소금을 통해 만나고 헤어지고 바뀌면서 사는 일을 배워나가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가 사는 거대한 자본의 시스템에서 이 시대 아버지는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얻고 잃으며 떠돌면서 살고 있는지를 그려낸다. 가장의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도깨비 방망이 두드리듯 계속해서 가족의 쓸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 정황에 아버지를 내모는 일은 희생의 강요, 관계가 앞세우는 폭력일 수 있을 것이다.

  ‘젊은이들이 화려한 문화의 중심에서 만 원씩 하는 커피를 마실 때, 늙은 아버지들은 첨단을 등진 변두리 어두컴컴한 작업장 뒤편에서 인스턴트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있는 게 우리네 풍경’이라고, 우리 시대는 ‘대량생산과 거대소비의 흐름에 중독되어 살아간다’고. 아버지가 젊어 힘 있게 일할 때 가족들은 시대가 주는 것들의 단맛을 볼 수 있었지만 늙어가는 아버지가 무엇도 더 해줄 수 없는 그 어떤 시기는 당도하고야 만다는 그런.

 사람이 사람에게 해줄 것이 단지 경제적인 면만은 아닐진대 유독 아버지는 경제력만으로 고려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적 사고와 현실의 극대화일 것이다. 노고를 인정받기 보다 무력한 노동력으로 어디서고 물러나야 하는 쓰라림,  더는 할 수 없는 때에도 무엇인가를 더 내놓아야 하는 현실의 필요 앞에서 무력해진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출이라고, 그것은 최선이 아니지만, 차선으로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이 몰려있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읽을 수 있다. 폭력과 강압으로 가족들을 힘겹게 만드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들의 다른 편에는 애쓰고 힘쓰며 한 가정을 일으키느라 고생한 아버지들의 이야기도 있다. 그 아버지들은 출생부터 휘황한 영웅이 아니라 죄절과 고통을 근근덕신 감당해 낸 위인이야기 반열에 놓여야 하이리라.

 아버지를 ‘사람’으로 이해할 때 한 사람의 삶에 지워진 무게를 깜냥껏 감당하려 애써온 인간 종족들 중 남자인 존재들의 노고를 치하해줄 지점이 확보될 수 있으리. ‘사람’이 아니라 역할, 기능, 관계로만 본다면 여자고 남자고 아이고 어른이고 이해받을 길이 없다. 아버지는 사람이고, 사람이면 누구나 필요한 위로와 이해가 필요한 존재라고, 그도 울고 웃고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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