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수장들 줄줄이 법정행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14일 정치·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되면서 '오욕의 길'을 간 역대 정보기관 수장들의 뒤를 이었다.

재임 시절엔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권세'를 누리던 정보기관장들이 정권의 퇴진과 함께 내리막길을 걷는 건 이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권력의 맛'에 취한 일부 수장들은 권력의 측근으로 있으면서 정치에 개입하거나 막강한 힘을 무기로 각종 불법 행위들을 부끄러움 없이 저질러 왔다.

정보기관장의 수난사는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왔다.

무려 6년 3개월을 중정부장으로 재직한 김형욱(1963.7∼1969.10) 전 부장은 숱한 정치 공작으로 악명을 떨쳤으나 퇴임 후 미국으로 망명, 유신정권을 비난하다 19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소리 소문 없이 실종됐다.

주일대사로 재직하다 중정부장으로 발탁된 이후락(1970.12∼1973.12)씨는 재임 중 2인자로 군림했지만 대통령의 신임을 잃자 영국령 바하마로 망명길에 올랐고 귀국 후에는 경기 하남에서 도자기를 구우며 칩거하다가 2009년 별세했다.

'그때 그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통해 재조명된 바 있는 김재규(1976.12∼1979.10) 전 중정부장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시해하고 이듬해 5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김종필 전 총리는 중정을 창설하고 초대 부장을 지낸 주인공이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후에는 재산이 몰수되고 정치활동이 금지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안기부 시절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심복이던 장세동(1985.2∼1987.5) 전 안기부장이 5공 비리에 연루된 혐의 등으로 5공 정권이 끝난 뒤 수차례 구속됐다. 6공 때 안기부장을 지낸 이현우(1992.10∼1993.2)씨는 1995년 11월 기업인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정보기관장의 수난사는 문민정부 들어서도 이어졌다.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장을 지낸 권영해(1994.12∼1998.3)씨는 DJ정권 출범후 '총풍'과 '북풍(北風)' 등 각종 공안사건 조작 및 안기부의 공기업 대선 자금 불법모금사건 등에 연루돼 철창신세를 졌다. 권씨는 성경을 갖고 와 검찰 수사를 받던 중 미리 준비해 온 문구용 칼로 자해를 시도하기도 했다.

김대중 정권에 재직했던 역대 국정원장들도 뒤끝이 흉흉했다.

참여정부 들어 국정원 불법 도청 사건이 불거져 임동원(1999.12∼2001.3), 신건(2001.3∼2003.4) 전 원장이 불법 감청에 관여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 사상 첫 내부 승진자로 조명을 받았던 김만복(2006.11∼2008.2) 전 원장은 2007년 12월 대선 전날 방북해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나눈 대화 내용을 외부에 유출했다가 논란이 일자 자진사퇴한 뒤 검찰 조사를 받았다.

또 2011년 일본 월간지 '세카이(世界)'와의 인터뷰를 비롯, 기고와 강연 등을 통해 국정원장 재직 시 알게 된 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국정원으로부터 고발당했으나 기소유예됐다.

김 전 원장의 전임인 김승규(2005.7∼2006.11) 전 원장은 퇴임 직전인 2006년 10월 "일심회 사건은 간첩단 사건"이라는 내용의 언론 인터뷰를 해 피의사실 공표 및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또 다른 권력기관인 경찰의 수장 중 일부도 오명을 남겼다.

직권 남용 혐의 등으로 법정에 서게 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경찰 조직에 누를 끼친 역대 수장 가운데 한 명이 됐다.

지난 2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으로 사자(死者)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가 인정돼 법정 구속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에 앞서 강희락 전 경찰청장은 건설현장 식당(함바) 브로커로부터 청탁과 함께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이무영 전 경찰청장은 2000년 2월 수지 김 피살사건에 대해 내사 중단을 지시하고 내사 기록을 국정원에 넘겨주도록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으나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 연루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최기문 전 경찰청장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택순 전 경찰청장은 각각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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