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장관 사실상 지휘권 행사에 수사팀 반발 논란 - 정치적 쟁점 비화…상설특검 가속화 등 대책 거론

검찰이 14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선거법 및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기로 결정하는 등 '국정원 대선·정치 개입 의혹' 사건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수사는 박근혜 정부 들어 첫 대형 공안사건 수사로 큰 관심을 받았다.

검찰이 두 달간의 수사 끝에 14일 원 전 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기소하면서 지난해 대선 직전에 터져 나온 '국정원 사건'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수사 종반에 원 전 원장의 신병처리 수위와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을 놓고 검찰과 법무부 간은 물론 검찰 내부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개운찮은 뒷맛을 남겼다.

이번 국정원 사건 수사에 대한 검찰 조직은 물론 수사팀의 각오는 대단했다.

수사팀 구성 열흘 만에 원 전 원장을 전격 소환한데 이어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하면서 검찰 수사는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듯 했다.

이는 '수사 축소·은폐 의혹'이 불거진 경찰 수사와 대비됐다.

검찰이 의혹에 성큼성큼 다가가면서 원 전 원장 및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사법처리 결과에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5월 말이나 늦어도 이달 초로 예상됐던 수사결과 발표가 지연되면서 검찰 안팎에서 이상 기류가 감지됐다.

수사팀이 원 전 원장에 대해 국정원법은 물론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중간보고를 했으나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황 장관이 "법률가로서 양심상 도저히 선거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치며 법리 검토를 다시 해볼 것을 주문하자 검찰 내부에서는 "정식 지휘권 행사는 아니지만 장관이 수사팀 의견을 묵살한 것은 사실상의 지휘권 행사에 속한다"며 반발하는 기류가 거세졌다.

정치적 논란을 우려한 법무부와 검찰은 즉각 해명에 나섰다.

법무부와 검찰은 "중요 사건 수사에서는 통상적으로 검찰이 법무부에 보고해 오고 있으며 '이견'이 아니라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 있다"고 애써 해명했다.

논란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에 있었다.

검찰보고 사무규칙 상 법무부 장관은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을 수 있다.

법무부 장관은 이를 토대로 검찰에 재수사 또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할 수 있다.

검찰청법 8조(법무부장관의 지휘·감독)에는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돼 있다.

수사지휘권은 한동안 법무부와 검찰조직의 위계를 정하는 상징적 조항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2005년 당시 천정배 장관이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며 헌정 사상 처음으로 지휘권을 발동하면서 법무장관의 지휘권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문제는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행정부의 일원인 법무부 장관이 준사법기관으로 독립성·중립성을 요구받는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를 통해 언제든지 일선 수사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이 황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제출과 재정신청을 검토하겠다고 압박하면서 원 전 원장 처리 여부가 정치 쟁점으로까지 비화되자 검찰은 이례적으로 최종 수사결과 발표 전 '불구속 기소, 선거법·국정원법 동시 적용'이라는 원 전 원장에 대한 처리 방침을 공표했다.

이번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찰 내 특수-공안 라인의 갈등은 검찰 '갈지자 행보'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특별수사팀에 이례적으로 공안 및 특수부 검사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평소 다른 수사 스타일로 인해 충돌을 빚었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특수부 검사들은 핵심 증거가 확보되면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기소하는 데 거침이 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반면에 정치·선거 등과 직결되는 민감한 사건을 주로 처리해 온 공안부 검사들은 확실히 입증이 가능한 혐의 위주로 기소해야 한다는 신중한 스타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법무부와 검찰 간 갈등이 아니라 공안통인 황 장관을 포함한 공안 라인과 채동욱 검찰총장을 위시한 특수통 간의 갈등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결국 검찰 수사로 국정원의 대선·정치개입 전말이 밝혀졌지만 이번 수사는 법무부와 검찰 양측 모두에 상처를 남겼다.

검찰은 채 총장이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정치적 중립성·독립성 확보',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라는 대원칙이 이번 수사과정을 통해 상당 부분 훼손됐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로 인해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상설특검 설치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법무부 역시 정권 초기부터 검찰 수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점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현재 CJ그룹 비자금 사건, 4대강 입찰담합 사건, 영훈국제중 비리 고발 사건, 원전비리 관련 사건 등 대형수사가 줄줄이 이어지는 가운데 검찰과의 정상적인 보고와 의견 교환조차 수사 개입으로 비춰질 여지가 커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첫 사정라인 지휘부인 '황교안-채동욱'호가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호흡을 맞춰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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