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부, 엑스포공원에 기초과학연구원(IBS)입주 제안
염홍철 대전시장, 4대조건 제시 미래부 의견 수용 발표
경제·과학계, 과학벨트 용지매입 예산문제 해결 찬성
시민단체·야권, 과학벨트·시민공원 기능 축소 반대




‘창조적 연구환경 조성을 통해 세계적 두뇌가 모이고, 기초과학과 비즈니스가 융합된 국가성장네트워크.’
지난 2009년 정부가 마련한 ‘국제과학비즈니스과학벨트(이하 과학벨트) 종합계획’에 기술된 과학벨트의 개념이다.
5조2000억원이 넘는 투자로 선진국 수준의 기초과학연구원과 대형연구시설인 중이온가속기를 짓고 중대형·융복합 기초과학연구를 진행하고, 과학·문화·예술이 함께 숨 쉬는 국제적 정주 환경도 갖춰 세계적 석학들까지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연구 성과와 비즈니스를 연계, 결국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대전시와 과학기술계의 설명이다.
전국 공모로 진행된 과학벨트 조성사업은 2011년 5월 대전 유성 둔곡과 신동지구가 거점구역으로 확정됐다. 이후 행정절차를 마무리하고 지난해 2월 지구지정까지 진행됐다.
이런 과학벨트가 최근 들어 이른바 ‘플러스알파(+a)’, ‘축소’ 논란에 휩싸였다.


미래창조과학부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거점지구 핵심시설인 기초과학연구원(IBS)을 입주시키자고 대전시에 제안한 대전엑스포과학공원 야경. 지난 8일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는 엑스포과학공원을 포함한 대덕연구개발특구를 창조경제의 전진기지로 만들기 위해 엑스포과학공원에 기초과학연구원과 과학체험 및 전시 공간 등 창조경제 핵심시설을 직접 조성하는 방안을 대전시에 공식 제안했다.
미래부는 대전시에 보낸 공문에서 “이 사업이 추진되면 과학벨트와 대덕연구개발특구의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해당 시설을 대전시민과 함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명시했다.
이에 대전시는 14일 과학벨트 거점지구 면적 축소 불가 등 4가지 요구사항을 정부가 수용할 경우 ‘IBS 엑스포과학공원내 조성’을 골자로 한 미래부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의 공문을 미래부에 전달했다.
염홍철 대전시장이 직접 밝힌 4대 조건은 △343만㎡의 과학벨트 거점지구(유성구 둔곡·신동지구)면적 축소 불가 △과학벨트 거점지구 연구시설 부지매입비 전액 국고 부담 △엑스포공원 사이언스 센터 등 창조경제 핵심시설 건립 △대덕특구 창조경제 전진기지 조성 방안 국가정책 반영 등이다.
대전시는 이를 통해 내년 과학벨트 착공, 엑스포공원 재창조, 산업단지 용지난 해소 등 기존 지역의 3대 현안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대덕특구가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를 구현할 전진기지가 될 수 있는 전기도 확보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야권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이를 ‘제2의 세종시 수정안 사태’로 규정하고 쟁점화 할 태세다.
특히 여야 정치권은 셈법에 분주하다. 내년 6·4 지방선거를 1년 앞둔 가운데 최대 화두로 떠오른 과학벨트 문제 결말에 따라 지역 민심 향배가 선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IBS 엑스포공원 입주’ 제안 배경은
 새누리당 충청권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들이 지난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과학벨트 관련 긴급 현안간담회’를 열고 미래부가 대전시에 제안한 안에 대해 찬성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인 이상민 의원이 13일 민주당 대전시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전시가 엑스포과학공원에 과학벨트 거점지구 핵심시설인 기초과학연구원(IBS)을 입주시키자는 정부의 제안을 수용하면 과학벨트는 빈껍데기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창조경제의 전진기지’. 최근 들어 과학벨트에 붙는 수식어다. 대학이나 정부 출연연구소들이 담당하지 못했던 대규모 기초과학 연구업무를 수행해 이를 사업화하는 것이 과학벨트의 목적이다. ‘기술개발→사업화→재투자’로 이어지는 창조적 생태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과학벨트는 크게 거점지구와 연계 응용연구 및 개발연구, 사업화 등 비즈니스 중심기능을 수행할 기능지구로 구성된다. 거점지구에서 개발한 기초연구성과의 기술을 응용해 창업할 인재인 과학-비즈니스융합전문가(PSM)를 양성하는 게 기능지구의 주요 업무다. 기능지구는 세종시와 충남 천안, 충북 청원 등 세 곳에 조성될 계획이다.
IBS 건립을 위한 부지 매입엔 7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부는 올해 이 예산을 한 푼도 반영하지 않았다. 설계 감리비 예산 248억원만 편성했을 뿐이다. 정부는 IBS가 들어설 대전시가 혜택을 보는 만큼 일부 예산을 부담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대전시는 재정난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기능지구 지원을 위해 올해 배정된 예산도 63억원에 불과했다. 당초 계획된 400억원의 16% 수준이다.
대덕특구 연구기관 관계자 “거점지구 부지 매입비가 확보되지 않아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의 정상운영이 늦어지고 있다”며 “기능지구 핵심사업인 PSM 양성과 기초연구성과 후속 연구·개발(R&D)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중이온가속기도 내년 착공이 어려운 상황이다. 총 사업예산 4604억원 중 18.5%인 854억원만 올해 배정됐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미래부가 엑스포과학공원 터를 대전시에 요구한 것은 일종의 협상안이다. 대전시 또한 신성장동력이 될 과학벨트 사업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판단에 조건부 수용의 답신을 보냈다.

●지역 정치권, 미래부 제안 정면충돌’
지역 정치권은 이번 ‘미래부 제안’을 놓고 정면충돌 양상을 빚고 있다.
새누리당은 미래부의 제안이 ‘대전발전과 국가발전에 도움이 된다’며 수용 입장을 밝힌 반면, 민주당은 ‘과학벨트를 반토막으로 만드는 빈껍데기 정책’이라며 정부를 비난했다.
새누리당 충청권 국회의원모임은 최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미래부 이상목 1차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과학벨트 관련 긴급 현안간담회’를 열고 “정부가 대전시에 제안한 과학벨트 기존안에 창조경제 전진기기 구축을 포함하는 ‘플러스 알파안’에 원론적으로 찬성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일부 대전시와 미래부가 합의할 세부 항목이 있지만 원론적인 정부 안에 대해서는 대전시와 대한민국 발전을 위한 윈-윈하는 안이라는 데 결론을 냈다”고 덧붙였다.
박성효 새누리당 대전시당 위원장은 “미래부가 제시한 안은 과거의 안보다 잘된 방안”이라며 “정부의 안은 대전시가 제안한 조건을 다 충족하는 것이고, 당초 과학벨트 부지는 다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부지 축소가 아니라 오히려 확대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기초과학연구원이 엑스포공원내에 입지하면 주변 정주여건이 잘 갖춰져 있어, 과학벨트 사업이 빠르게 이뤄질 수 있고, 원래 기초과학연구원 부지에는 민간연구원 이나 기업 등이 조성될 수 있는 잇점이 있다”면서 “기존 과학벨트의 모든 콘텐츠들이 다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박 위원장은 “엑스포과학공원은 정부로 부터 무상으로 받은 땅이다. 대전시는 앉아서 득을 보는 것”이라면서 “6월부터 예산작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논란은 빨리 접고, 예산확보 노력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번 미래부의 제안이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맹비난하고 있다.
민주당은 “대전시가 엑스포과학공원에 과학벨트 거점지구 핵심시설인 기초과학연구원을 입주시키자는 정부의 제안을 수용하면 과학벨트는 빈껍데기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상민 민주당 대전시당 위원장은 “기초과학연구원이 엑스포공원에 입주하면 과학자들이 거주하는 사이언스 공간이 없어져 결국 과학벨트의 핵심이 빠지게 되는 것”이라며 “미래부는 과학벨트 예정지에 산업단지를 조성해 준다는 달콤한 거짓말로 IBS의 엑스포공원 입주를 추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대전시가 미래부 제안을 수용하는 것은 시민의 자산인 엑스포공원을 정부에 헌납하는 것”이라며 “염홍철 시장은 343만2000㎡에 이르는 과학벨트 거점지구 면적 축소 불가 등 정부에 전달하기로 한 ‘4가지 요구 사항’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즉각 퇴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학벨트 반토막 시도를 ‘제2의 세종시 수정안 사태’로 규정하고 원안 사수를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과학벨트 축소’ vs ‘문제 일괄해결’
미래부 제안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과학벨트의 기능 축소와 시민공원 축소 등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반면 경제계와 과학계는 과학벨트 용지매입 예산 문제 등을 한꺼번에 해결할 방안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최근 대전시청에서 열린 ‘IBS 엑스포과학공원 입주에 대한 시민직능단체 간담회’에서 양흥모 대전녹색연합 사무처장은 “기초과학연구원을 (당초 계획했던 곳에서 엑스포과학공원으로) 옮기는 것은 과학벨트 역할을 훼손하고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광진 대전경실련 사무처장은 “미래부의 계획대로 된다면 시민 편의공간인 엑스포과학공원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기동 대전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은 “국책사업은 정부와 국민의 약속인데 정부가 마음대로 파기하고 있다. 지지부진한 과학벨트 추진계획에 대한 입장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IBS 입지 변경 논의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송현옥 한국경제인협회 대전지회 총무이사는 “대전시가 명실상부한 과학도시로 발전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좋은 제안이 들어온 만큼 대전의 특성을 살릴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차연복 대덕이노폴리스벤처협회 본부장은 “대안 없는 비판은 안 된다. IBS의 축소문제가 우려되긴 하지만 합목적성이 있다면 (정부의 결정을) 따를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박진호 대전시개발위원회 사무처장은 “제안을 수용해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학계는 IBS의 입주 추진에 대해 ‘환영’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장인순 전 원자력연구원 원장은 “과학자 대부분은 IBS 최적지로 엑스포공원을 꼽고 있으며, 롯데테마파크가 오는 것보다 IBS가 오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IBS가 과학공원에 입주하면 과학벨트 사업을 2년이나 앞당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과학기술은 시간과의 싸움인데, 과학벨트 사업과 관련해 더 이상의 시간 낭비는 안 된다”며 “이제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고 (정부안을 수용해) 사업을 서둘러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용국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기획관리본부장은 “미래부 제안대로 엑스포공원에 창조경제 핵심시설을 집중 설치하면 엑스포공원을 국민과학교육의장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IBS 건립 예정지인) 둔곡지구의 경우 산업용지로 활용하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순 전 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은 “시가 과학벨트와 관련해 최근 제시한 4대 원칙을 찬성하지만 이를 너무 고수하면 소탐대실하게 될 것”이라며 “시는 이런 점을 감안해 사업을 추진해야 하고, 장기적으로 엑스포공원을 대한민국의 실리콘밸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처럼 대전 유성구 도룡동 대전엑스포과학공원에 과학벨트 핵심시설인 기초과학연구원(IBS)을 입주시키자는 미래부의 제안을 놓고 지역 여론이 크게 갈리고 있다. 당초 이곳에 롯데테마파크를 건설할 계획이었던 대전시는 ‘4대 원칙’을 제시하며 수용 입장의 공문을 미래부에 전달했다.
이제 공은 미래부로 넘어갔다.
미래부가 대전시의 요구조건에 아무런 단서를 달지 않고 승낙하면 과학벨트 사업은 속도를 낼 것이다. 부지매입비의 자치단체 분담 논란으로 2년째 지지부진한 과학벨트 사업이 미래부와 대전시 간의 ‘빅딜’ 성사 여부에 물꼬를 틀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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