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길 새 장편소설 ‘천사의 깊고 편한 잠’… “청소년에 대한 어른의 책임 강조”

유소년 시절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의 삶을 살기 전에 무수한 삶을 경험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 무수한 삶을 어떻게 경험하게 하는가는 어른의 책임이다.’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이다. 어린아이가 온전한 한 인간으로 성장하기까지 어른들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한 이 말을 원로작가 안수길(74·사진)씨는 소설 천사의 깊고 편한 잠을 통해 깊이 있게 새긴다.
천사의 깊고 편한 잠은 부모의 학대와 학우들의 따돌림,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극한의 궁지에 몰린 소년이, 생존을 위해 들개처럼 변모해가는 과정을 모자이크 식으로 그려 낸 성장소설인 동시에, 일종의 고발소설이다.
결국 어른들이 장난삼아 준 술 한 잔에 소년이 목숨을 잃게 되는 결말은, 아이들을 따뜻이 품어야할 어른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냉혹한가를 말 해 준다. 작가는 본문에 앞에 유소년 시절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의 삶을 살기 전에 무수한 삶을 경험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 무수한 삶을 어떻게 경험시키는가는 어른의 책임이다라는 릴케의 말을 인용, 청소년들을 위한 어른들의 책임이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있다.
초등학생인 소년은 일학년 때까지 성실한 개인택시 운전기사 아버지와 알뜰한 어머니 밑에서 다복하게 살면서 꿈을 키워왔다. 그러나 교통사고 뒤처리로 가세가 기울자 아버지는 주정뱅이로 타락하고 어머니마저 돈 벌어 오겠다며 가출하자, 소년은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된다. 아버지가 던져주는 돈 3000원으로 하루를 살아야하는 소년은, 술만 취하면 분풀이 삼아 퍼붓는 아버지의 매타작을 견디며 배고픔과 외로움에 서서히 지쳐간다.
마침내는 엄마를 기다리던 마음도 접고 꿈도 버린 채, 속이고 훔치고 빼앗아먹으며 배를 채우고 싸움질로 분노를 달래는 막된 아이로 변해간다. 부끄러움 따위는 뚜껑을 닫고 염치도 내버린 소년은 어머니가 돌아오면 기쁘게 하기 위해 모아두었던 상장마저 찢어버리고 모든 것을 포기한다. 아이들의 따돌림과 선생님의 가시 박힌 눈초리와 회초리, 학부모들의 구박에도 아랑곳 않고,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서 들개처럼 산다. 그러나 일학년 때의 짝꿍이었던 민희를 향한 마음만은 고이 간직하고 있지만, 민희와의 대면은 한사코 피한다.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다 못해 우연히 들어선 식당에서, 손님들을 속여 고기와 술을 얻어먹고 취한 소년이, 눈 오는 추운 밤거리를 헤매다 깊고 편한 잠에 빠져, 동사하는 것으로 소년의 짧은 삶도 소설도 막을 내린다.
청소년 문제의 원인이 결손가정에서 비롯된다거나, 그 결손의 원인이 아버지의 음주와 방만, 어머니의 가출에 있다는 것은 지극히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얘기다.
그러나 작가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소년이 서서히 의식형태를 바꿔가며, 종내는 세상을 꿰뚫어보는 약삭빠름을 익혀, 누구나 속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도록 변모해가는 과정을 깜찍하고 얄미운 모습으로, 생생하게 그려 냄으로써 독자를 긴장시킨다.
소년의 삶을 부각하기 위해 설정 된 주변 인물들의 뚜렷한 개성과 특이한 인연, 생기 넘치는 대화, 기지와 해학이 넘치는 속어는, 독자에게 잠시의 쉴 틈조차 주지 않는다. 소년의 가슴에 영원한 꽃으로 남아있는 민희, 소년의 무한한 신뢰의 대상으로 삐끼 노릇하는 껄떡이 형, 고물 줍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양로원과 고아원을 세우겠다는 꿈을 가진 재준이, 소년을 괴롭히는 짝패들과 그 어머니들, 소년에게 장난삼아 술을 먹이는 신사들, 모두가 개성이 뚜렷하면서도, 어른들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위를 돌아보게 하는 존재들이다.
그런가 하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장면을 곳곳에 배치, 재미와 웃음 뒤에 진한 감동으로, 눈에 보이는 외양과 거친 행동 뒤에 숨겨진 순수한 동심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 준다.
특히 술에 취해 눈 내리는 거리 담벼락 밑에 쓰러진 소년이 아버지의 매타작도, 아이들의 놀림도, 선생님의 꾸중도 없는 깊고 편한 잠’(죽음)에 들기 직전, 환각, 환청으로 느끼는 따스한 장면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기대와 배신감이 함께 휘몰아치는 의식의 내면 묘사는, 어린 생명에 무심한 어른들의 가슴을 향해 던지는 일종의 비수(匕首)
작가는 시종일관 흥분하거나 설교 한마디 없이 시침 뚝 떼고 차분한 가운데, 재미와 웃음과 감동을 교차시키며, 동심세계의 행동과 언어를 생생하고 속도감 있게 묘사, 이기와 아집에 사로잡힌 어른들에게 진실의 눈을 뜨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안 소설가는 아이들의 갈수록 거칠게 변하는 것은 그들이 속한 환경 탓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 들개처럼 거칠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청소년과 그들을 자녀로 둔 부모들에게 작은 깨우침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청주 출생인 안 소설가는 청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충북예술상과 충북문화상, 한국농민문학작가상, 충북도민대상 등을 수상하고 현재 한국문인협회·한국소설가협회·한국농민문학회·뒷목문학회 회원과 동양일보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뿔알락하루살이의 사랑3권의 단편소설집과 갈 곳 없는 사람들등 중편 2, ‘그 사람 만적’(3) 8권의 장편집, 칼럽집 비껴보기 뒤집어보기등이 있다.
도서출판 새미, 389, 12000. <김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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