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일(극동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

  요즘 예능 프로그램은 남자들이 대세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대표적인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무한도전’(MBC)이나 ‘1박2일’(KBS2)은 남자 연예인들로만 진행된다. 사전에 정해진 각본도 없이 야외에서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프로그램 특성상 여자들이 출연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울 듯하다. ‘런닝맨’(SBS)이나 ‘정글의 법칙’(SBS)처럼 여자들이 하나씩 끼어있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홍일점인데다 예쁘장한 얼굴과는 다른 중성적인 매력과 털털한 성격으로 주목받는 편이다.

  최근에는 한술 더 떠서 제작진은 아예 개입하지 않고 출연진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만 보는 이른바 ‘관찰 버라이어티’ 포맷이 인기다. ‘진짜 사나이’(MBC)는 출연진들의 진짜 군생활을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일요일 저녁시간대의 강자로 자리 잡았다. 배우, 개그맨, 가수 등 다양한 연예인들은 현재 복무 중인 병사들과 일주일 동안 함께 내무반 생활을 하고 군사훈련도 받는다. ‘나 혼자 산다’(MBC)는 또 어떤가. 혼자 사는 미혼 남자 연예인들과 해외로 보낸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홀로 생활하는 기러기 아빠들의 적나라한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조건’(KBS2)은 현대인의 필수조건 가운데 하나를 금지당한 채 생활해야 하는 여섯 개그맨들의 좌충우돌 체험기를 방송한다.

  이런 프로그램의 인기는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보았을 법한 곤혹스런 상황에서 보이는 출연진들의 모습이 여과 없이 노출되는데 있다. 우리와는 다른 사람으로 생각되던 연예인들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망가지는 것을 보며 웃음이 터지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이미지 때문에 행동거지에 제약이 많은 여자보다는 카메라 앞에서도 거침없이 행동할 수 있는 남자 연예인들이 대세를 이룰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진정한 예능의 대세는 연예인이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가식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순수한 캐릭터들이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이가 배우 조달환이다. 2001년 데뷔해서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다양한 배역을 소화했지만 그는 여전히 무명에 가깝다. 연예인들 사이에서 탁구 잘 치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일반인들과 스포츠 경기를 하는 ‘우리동네 예체능’(KBS2)에 출연할 기회를 얻는다. 첫 방송부터 “초레이~하!”라는 특이한 구호를 외치며 신기에 가까운 탁구 기술을 보여준 그는 이후 6주 동안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덕분에 일회성 게스트에서 고정MC로 전격발탁되었다.

  영화 ‘친구’에서 “니 아버지 뭐하시노?” 하며 주인공의 뺨을 후려치는 담임 역을 실감나게 연기했던 배우 김광규도 2013년 새롭게 발견한 예능 재목이다. ‘나 혼자 산다’(MBC)에서 노총각의 절절한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그는 살아온 인생 자체도 다큐멘터리였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일찌감치 부사관으로 군복무를 한 후 택시 운전을 하다 31세 때 비로소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왔다. 1999년 영화 ‘닥터K’의 단역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해서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나 싶었는데 얼마 전 전세사기를 당해 10년 동안 모은 돈을 모두 날렸다고 한다.
다소 어리숙해 보일 정도로 순수한 캐릭터가 각광을 받는 것은 카메라 앞에서 보이는 이들의 모습에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이들이 방송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실제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가식 없는 말과 행동을 보며 시청자들은 대리만족을 느낀다. 평소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하루 종일 내 속과는 다르게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삶인가. 집에 돌아와 가식을 벗어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TV 앞에 앉은 우리에게 요즘 예능 대세들은 대리만족과 즐거움을 주는 활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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