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연 기(한국교통대 교수)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일본의 소설가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책이 당시 ‘서울대망국론’과 더불어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이들 모두 일본과 한국을 대표하는 두 대학을 내세운 양국의 대학교육에 대한 성찰을 다루고 있지만 다치바나가  도쿄대를 예로 들어 말하고자 하였던 ‘지적 망국론’에서 대학교육, 그 중에서도 교양교육에 대한 지적은 공교육 수준의 질적 하락을 염려하는 지금의 우리나라 대학 교육을 진단함에 있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다치바나에 따르면 지적 망국론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일본의 문부성이 과거 ‘융통성 있는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실시했던 교육 수준의 하향 평준화에 따른 대학 신입생의 수학(修學) 능력저하, 또 다른 하나는 대학 교양(liberal arts)교육의 빈곤이었다.

필자가 대학에서 강의를 진행하면서 최근 들어 학생들의 기초학력에 대해 꾸준히 의문을 가져왔었다. 특히 대학 2학년의 전공기초과목 수강생들을 살펴보면 그들의 수학, 물리와 화학을 포함한 기초과학에 대한 지식이 과목에서 요구하는 지식과는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학생들의 기초학력 부족은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만의 문제는 아니며 우리나라 대학 교육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교수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사항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현행 대학수학능력 시험 응시과목을 보면 문·이과 별로 응시과목 종류의 차이가 클 뿐 아나라 동일 영역 내에서도 출제 범위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특히 사회탐구(10과목) 및 과학탐구(8과목)의 경우 선택과목이 영역별 최대 2과목에 불과한 실정임을 알 수 있어 과거 학력고사 시절 이과생의 경우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중 2과목에 대해 I, II과목 모두를 이수했던 것에 비하면 학습량이 현저히 줄어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마저도 사교육 과열을 염려한 나머지 점차적으로 난이도를 낮추고 있어서 학생들은 새롭거나 난이도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 보다는 쉬운 문제를 안 틀리는 훈련을 반복하게 된다. 결국 수학능력시험이 대학을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수학능력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 기능보다는 쉬운 난이도에 대한 암기 위주 지식에 대한 평가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대학 신입생의 학력저하를 극복하기 위한 대학의 노력이 충분했는지에 대해서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학관련 기초 교양을 살펴보면 여전히 신입생의 수학능력과 무관하게 과거와 동일한 난이도와 분량을 가진 미분적분학, 일반물리학, 일반화학 교재에 의한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만일 고교시절 화학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이 지금의 일반화학을 수강하게 되면 해당 교수의 입장에서는 증학교 졸업생을 상대로 대학 일반화학을 강의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이 누적되면 결국 전공교과의 진행에도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또한 소위 말하는 전공 관련 기초 교양이 아닌 전통적인 일반 교양(liberal arts)에 대해 학생들은 그저 졸업을 위한 구색 맞추기 식의 수강에 머무는 경우도 많다. 대학의 열악한 재정상황과 교수확보율과도 밀접한 상관은 있으나 현재 각 대학별로 진행하고 있는 교양강좌의 폭과 깊이가 대학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양강좌’ 혹은 교양관련 서적에 비해 얼마나 차별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의 지식기반 중심의 사회에서 요구하는 지식과 기능을 고려했을 때 폭넓은 교양을 갖춘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전공 교육 못지않게 교양교육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수능을 중심으로 한 고등학교 교육의 하향 평준화만 탓할 것이 아니라 지금의 대학 신입생들의 기초학력 강화를 위해 교양교육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울러 대학 내에서 이루어지는 교양이 대학 밖에서 이루어지는 교양강좌와의 차별성을 얻기 위해서는 강좌의 다양함은 물론 대규모 강좌 중심의 주입식 수업이 아닌 소규모 강좌 운영을 통해 학생 스스로의 사고력과 창의성을 신장할 필요가 있다. 융합 또는 학제적 교육은 전문적인 지식 뿐 아니라 교양이라는 총체적인 지적 능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대학이 직업 교육기관화 되고 있다는 현상에 대해 논란이 많다. 그럼에도 교양 없는 대학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직업교육만 받은 특정 기술 전문가보다는 조직을 경영하고 정책을 기획하고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전문성 있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를 양성하는 것이 대학 교육의 목표라고 할 때 교양교육은 전문성과 범용성 모두에 있어 필수적임을 대학에서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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