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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역사의 교훈을 얻지 못하면...
지나간 역사의 교훈을 얻지 못하면...
  • 동양일보
  • 승인 2013.06.1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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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준(청양군 목면 부면장)

역사책을 읽다보면 옛 왕조의 이야기들은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조선 19대왕 숙종에서 영, 정조대에 걸치는 사건들은 드라마중의 드라마다. 그래서일까 숙종조, 특히 장희빈의 등장은 늘 사극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권력과 여자는 시대를 넘어 많은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늘 사람들의 관심대상이었다. 아쉬운 것은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로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역사드라마에서 역사가 사라진지 이미 오래라는 비판을 새겨야 한다. 장희빈을 넘어야 비로소 역사가 보인다.

숙종은 아버지 현종의 외아들이다. 그는 1661년에 태어나 1667년 왕세자에 책봉되었고, 1674년 8월 즉위했다. 14세 때다. 왕의 나이가 14세면 어리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왕가에서는 흔한 일에 속한다. 정조의 둘째아들 순조는 11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며 다음 왕 헌종은 겨우 8세였다. 그 덕분에 순,헌,철 3대 60년간은 안동김씨와 풍양조씨가 번갈아 가며 국정을 말아 먹었다는 욕된 평가를 두고두고 후세까지 받고 있다.

한 인간의 폭과 깊이는 대개 그가 자라난 생태 환경에 따라 정해진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선대를 아는 것이 그 사람을 이해하는 지혜다. 숙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가야 살펴야 하는 이유다.

인조의 첫째 아들이 소현세자이고 둘째가 숙종의 할아버지가 되는 효종이다. 효종은 봉림대군 시절 병자호란의 볼모로 청나라에 잡혀갔었다. 형 소현세자와 8년간 심양에 머무는 중에 아버지 현종을 낳았다.

볼모의 원인이 된 인조반정은 숭명반청 세력이 주도했다. 반정으로 왕이 된 인조는 청나라의 미움을 받아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겪으며 결국 삼전도의 굴욕까지 당했다. 그 시절은 불행히도 명청 교체기였다. 왕조가 교체되면 주변 군기잡기는 필수과정이다. 어느 때보다 지혜로운 결정이 필요한 시절이었다. 그 때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지배층의 무능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재조지은. 이미 기울어져가는 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신흥강국 청을 오랑캐의 나라라며 한판 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들... 그 사이에서 왕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큰 아들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곡절 끝에 할아버지가 효종으로 즉위하지만 조선은 왕의 나라가 아니었다. 조선은 개국 초부터 태조 이성계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정도전의 기획 작품이었으니까. 역사 내내 임금들은 사대부의 등쌀에 오금을 펴지 못했다. 건수만 있으면 드잡이 질을 하는 건 조선사대부의 빛나는 전통이었다. 그들은 건수가 없으면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가며 조선역사 내내 줄기차게 편을 갈라 싸웠다.

청의 등장이후 조선은 스스로 중화의 본산임을 자처하는 소중화의 길을 부채질했다. 정신나간 사대부들은 진정한 임금은 이미 망한 명나라 황제이고 조선왕은 가장 높은 사대부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폈다. 왕은 살아남기 위해 신하들의 눈치를 봐야했다. 왕이 왕이 아닌 세월이었다. 

아버지 현종 재위11년에는 백성의 5분의 1인 100만명이 굶어죽는 전대미분의 대기근 사태가 발생했다. 참혹한 상황 속에서도 조선사대부의 정쟁은 멈추지 않았다. 며느리가 죽었을 때 시어머니가 상복을 얼마동안 입어야 하느냐를 놓고 피터지게 싸우는 일이 이른바 예송 논쟁이었다. 재위 15년 동안 아버지 현종은 부질없는 예송 논쟁 속에서 보내야 했다.

당쟁은 왕을 둘러싼 권력 싸움이었다. 왕의 선택을 받아 왕명에 의해 정당하게 권력을 쥐기 위한 쌈박질이 당쟁이었다. 남인과 서인관계에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남인은 청남과 탁남으로 수없이 갈라지는 상황이었다. 숙종은 살풍경한 궁궐 안에서 당쟁의 폐해를 몸으로 경험하며 자랐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도 터득했을 터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쟁이 격할수록 왕권은 강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후세에 환국에 환국을 거듭하며 당쟁을 적절히 이용해 왕권을 강화한 임금이었다는 평을 받는다. 왕이 왕이 아닌 세상에서 당쟁을 이용한 왕권강화는 그가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었을 것이다. 오늘 아군이 내일 적이 되고 어느 편이 다시 아군이 될지 알 수 없다. 날이 밝으면 뒤집어지는 세상 속에 내던져진 숙종은 구중궁궐 속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왕은 선택할 수 있는 여자들이 많았으나 그건 왕의 여자가 아니었다. 구중궁궐 도처에 놓인 당쟁의 덫이었다. 인경황후, 장희빈, 인현왕후, 숙빈최씨... 그 외에도 수많은 숙종의 여자들이 있지만 누구도 당쟁 속에서 숙종의 곁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것 조차 숙종의 뜻이었을까.

웃자고 하는 이야기에 죽자고 덤비는 것만큼 넌센스도 없다. 모든 드라마가 교육목적은 아닐테니까. 그러나 재미를 위해 만든 역사 드라마가 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한편 걱정스럽기도 하다. 더욱이 역사교육의 비중이 낮아진 이 땅에서 역사드라마는 자칫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역사는 삶의 교훈이다. 지나간 삶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잘못된 역사는 반복되는 법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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