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이혼할 때 두 사람의 전체 빚이 재산보다 많은 경우에도 상황에 따라 재산분할을 다툴 수 있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20일 "남편을 뒷바라지하느라 빚을 지게 된 만큼 재산 2억원을 분할해달라"며 오모(39·여)씨가 허모(43)씨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단지 부부의 총 재산이 채무보다 적다는 이유만으로 재산분할 청구를 배척한 것은 원심의 잘못"이라며 이같이 판결했다.

대법원은 "재산분할이 결국 채무분담이나 다름없더라도 법원은 그 채무의 성질 등 일체의 사정을 참작해 해당 청구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채무분담을 명할 때 일반적인 경우처럼 재산형성에 대한 기여도 등을 바탕으로 일률적인 분할 비율을 정해야 한다는 취지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1997년 부부 한쪽이 공동재산 형성 과정에서 빚을 져 두 사람의 전체 재산보다 채무가 많아졌을 경우 상대방의 재산분할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법원 관계자는 "이번 확정 판결은 부부의 양성평등과 실질적인 공평을 지향한 것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오씨는 2001년 사회활동가인 남편 허씨를 만나 결혼했다. 오씨는 정당활동을 하던 남편이 가계에 도움을 주지 못하자 개인과외 등을 하면서 뒷바라지를 했다.

심지어 남편의 선거자금과 활동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지인들에게 2억7천600만원을 빌렸고 보험사로부터도 3천만원 가량을 대출받았다.

그러나 남편 허씨는 오히려 오씨의 학교 후배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이후에도 자신의 외도가 오씨 때문이라고 비난하며 이혼소송을 청구했다.

이에 오씨는 허씨 잘못으로 인해 혼인생활이 파탄에 이르게 됐다며 위자료를 청구하고 채무 역시 허씨 때문에 떠안게 된 만큼 재산분할로 2억원을 지급해 달라며 맞소송을 냈다.

양측이 변론을 마친 시점을 기준으로 오씨와 허씨의 채무는 2억3천만원에 달해 총 재산 1억9천만원보다 많았다.

1·2심은 허씨 잘못을 인정해 "아내 오씨에게 위자료 5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면서도 재산분할 청구에 대해서는 "부부의 재산보다 채무액이 많아 남는 금액이 없는 경우에는 분할 대상이 아니다"며 오씨 청구를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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