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상임이사)

아이들이 노래를 한다.

아, 해맑다. 고운 종달새 소리 같다.

아이들이 사물을 두드린다. 흥겹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어깨가 들썩여진다.

시낭송으로 울림을 주는 아이, 교실을 무대 위로 옮겨 자신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풀어내는 아이들. 검은 옷을 입은 또다른 아이들은 아름답지만 격렬한 몸짓으로 현실의 답답함을 외치고자 애쓴다. 그럴 때 무대는 진지해지고 객석은 숨죽인 듯 조용하다.

그러나 보컬그룹이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자 무대는 한순간에 달라진다. 또래의 관중과 또래의 연주자들은 금세 하나가 되어 소리치고 박수하면서 호응한다.

보기 좋다. 아름답다. 풋풋하다.

지난 17일 청주예술의전당 대공연장에서 열린 ‘청소년예술제’ 현장의 모습이다. 수많은 공연들을 보며 살지만 아이들의 무대를 직접 볼 기회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행사에 참가하며 내심 흥미도 일었고, 요즘 아이들의 수준이 궁금하기도 했었다.

예술제는 국악 무용 미술 연극 시낭송 연예 음악 등 ‘청소년 효 한마음축제’에서 입상한 학생들에 대한 시상식과 수상팀들의 공연으로 진행됐다. 1,2층 객석을 가득 메운 관중은 행사를 주최하는 어른들과 교사 등 일부를 제외하곤 모두 학생들이었다.

공연은 시작부터 분위기가 괜찮았다.

충청필청소년교향악단과 협연한 차인홍 교수(미국 오하이오라이트주립대)의 바이올린 연주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귀한 연주였는데, 학생들의 관중매너 또한 일품이었다. 요즘 아이들이 워낙 자유분망해서 공연중 떠들거나 소란스럽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두 시간이 넘는 동안 아이들은 때로는 정숙하게 때로는 활기차게 때로는 열광하며 공연시간을 즐겼다.

예술제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을 보며 내내 기분이 좋았다. 저렇게 밝고 환하고, 재주가 있고, 끼가 넘치고, 소양과 매너를 갖추고 있는데 왜 신문의 사회면에는 늘 어두운 청소년 문제만 나오는지. 충북이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언제까지 지고 가야 하는지.

12세에서 20대 안의 젊은이들을 청소년이라고 부른다.

아직은 좀 설익은 듯하지만, 풋풋한 시기. 문득 이 시기의 아이들을 왜 청소년(靑少年)이라 부르는지 소년(少年)앞에 ‘푸를 청(靑)’자를 붙인 이유가 공감이 됐다.

그렇다. 푸르기 때문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신록의 색깔처럼 이 시기는 그렇게 푸른 시기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거쳐 온 시기. 그 시기를 거치고 어른이 되어 이제는 노년의 길로 접어들고 있지만 그땐 그것을 몰랐다. 그 때가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 시기인지 몰랐다.

엄한 교칙, 힘든 공부, 입시의 압박과 부족한 잠 등 그저 빨리 지나가기만 바랐던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느끼던 청소년시절이었다.

아마 요즘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과도한 학습과 과제, 시험에 대한 압박, 왕따 문제 등으로 힘겨워 하면서 때론 참지 못하고 자살로 이 시기를 벗어나려하는 청소년도 있을 것이다.

 


또 빨리 자라서 규제 당하는 이 시기를 벗어나 어른이 되고 싶기도 할 것이다. 어른이 되면 학교와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나 화장도 하고 멋도 부리며, 돈도 마음대로 쓰고, 자유로운 여행과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아니란다. 이는 마치 조명이 켜진 무대처럼 환한 모습만 상상했을 뿐이지, 불 꺼진 무대 뒤의 어두운 모습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 그에따라 지녀야 하는 책임과 경제에 대한 불안, 사회적 압박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를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청소년기. 이 시절을 아름답게 보내게 하려면 청소년예술제같은 행사를 자주 만들어줘야 한다. 청소년 우울증으로 시름시름 병들어 가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내 종달새처럼 지저귀고, 나뭇잎처럼 팔랑이게 하고, 새처럼 노래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 그것이 어른들의 몫이다.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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