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멕시코 등보다 환율·증시 변동폭 작아" - "채권시장서 외국인자금 이탈없는 것으로 분석돼"

버냉키발(發) 쇼크가 전 세계를 덮친 가운데 한국의 '금융시장 성적표'는 주요 신흥국과 비교하면 양호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정부는 분석했다.

원·달러 환율 상승폭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고 채권시장에서 외국인자금의 이탈도 거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한국의 '경제 기초 체질'이 다른 신흥국에 비해 탄탄해 급격한 자본유출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전망하면서, 위기를 겁내기보다는 미국 경기 회복 등 기회 요인에 주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환율 변동폭 상대적으로 작아

2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출구전략' 발언으로 인한 환율 변동률은 한국과 호주,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필리핀, 러시아, 멕시코 등 8개 주요 신흥국 중 한국이 네번째로 작았다.

원·달러 환율은 버냉키 의장의 발언 직전인 19일 달러당 1,130.8원에서 21일 1,154.7원으로 올랐다. 이틀 새 원화는 달러화 대비 2.07% 평가절하된 것이다.

브라질(3.45%), 러시아(3.18%), 멕시코(2.94%), 호주(2.77%)는 한국보다 변동폭이 컸다.

자국 화폐 평가절하 폭이 한국보다 작았던 신흥국은 인도네시아(0.25%), 인도(1.16%), 필리핀(1.62%) 정도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와 인도의 경우 버냉키 의장의 발언 직전인 6월 중순 자국 통화 가치가 약세를 지속하자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직접적·우회적 방법으로 개입한 바 있다.

이를 고려하면 방어막 없이 충격파를 맞은 주요 신흥국 중 한국은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받은 편에 속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증시로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국의 코스피 지수는 19일 1,888.31에서 21일 1,822.83으로 3.47%의 변동률을 보였다.

인도네시아(6.75%), 러시아(5.38%), 멕시코(4.92%), 필리핀(4.80%)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낙폭이 작았다.

정부는 이런 수치를 바탕으로 '출구전략' 쇼크로 한국 금융시장이 출렁거리고 있지만 주요 신흥국 진영 중에서는 성적이 나쁜 편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1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우리 경제는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대외 건전성도 개선되고 있어 다른 신흥국에 비해 그 영향이 차별화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번 '버냉키 쇼크'는 단기적으로는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등을 가져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경제에 득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버냉키 발언 뒤 시장이 미국 경기 회복 기조 등 긍정적인 신호보다는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 등 부정적인 측면에 더 과민하게 반응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현 부총리는 "급격한 단기 변동성에는 대응해야 하겠지만, (버냉키 발언이) 미국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논의에서 나왔다는 건 우리 경제에 플러스(+)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추경호 기재부 1차관도 23일 거시경제금융위원회에서 "우리 경제는 재정건전성, 경상수지 흑자, 외환보유액, 외채구조 등 경제 기초 체질이 다른 신흥국보다 양호해 급격한 자본 유출 가능성이 낮다"며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경제 회복으로 인한 수출 확대 등 기회 요인이 있다"고 진단했다.

●채권시장서 외국인자금 이탈 없어

'버냉키 쇼크'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이는 가운데 우려했던 외국인 자본의 국내 채권시장 이탈은 보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원화채권 투자자들이 외국 중앙은행과 장기펀드로 재편돼 채권시장에서 단기간에 급격한 자본유출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국인 원화채권 보유잔액은 20일 기준 100조2천억원(상장채권 시가총액 대비 7.2%)으로 지난달 1조4천억원 순증한 데 이어 이달에도 순투자액이 1조6000억원에 달했다.

올해 들어 늘어난 외국인 원화채권 투자액은 9조3000억원으로 지난 한 해 동안의 순투자액 7조4000억원을 이미 넘어섰다.

외화자금 순유입은 외국인 투자자에게 한국시장이 매력적이라는 긍정적 신호이기도 하지만 유입량이 과도할 경우에는 위기 시 급격한 자본유출로 이어져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킬 수 있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9∼12월 넉달 간 채권시장에서 외국인자금 134억달러가 순유출돼 주식시장(-74억달러)보다 이탈폭이 더 컸다.

이달 들어서도 외국인 보유 채권의 만기가 집중됨에 따라 외국인 채권자금 이탈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6월 중 만기가 도래한 외국인 보유 채권 규모는 총 8조7천억원으로 월 2조원 내외인 평소보다 쏠림 폭이 컸다. 실제 자금이탈로 이어질 경우 채권시장을 '패닉'으로 몰아넣을 만한 규모다.

그러나 만기 도래로 회수된 자금은 대부분 원화채권 재투자로 이어져 우려했던 자금이탈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미국의 출구전략 계획 발표로 채권금리가 폭등한 20일에도 외국인은 오히려 통안채 위주로 원화채권 4천643억원을 순매수했다.

기재부 국고국 관계자는 "6월 만기 채권 중 통안채 1조원 가량을 제외한 나머지는 만기지급이 이미 끝났다"며 "이달 외국인 채권투자가 순증했다는 것은 만기도래액이 빠져나가지 않고 재투자됐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버냉키 의장의 발언 이후인 20일과 21일을 통틀어 외국인 채권자금이 3천억원 이상 순유입을 지속했다고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밝혔다.

 

정부는 채권시장에서 외화자금의 '엑소더스'가 발생하지 않은 이유로 양호한 거시건전성 지표와 원화채권 투자 주체의 변화를 들고 있다. 우선 신용등급, 재정건전성, 외환보유고 등 거시지표가 좋아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을 신흥국과는 다르게 평가한다는 설명이다.

외국인 채권 투자자의 80%가량이 외국 중앙은행과 장기펀드 등 장기투자자 위주로 바뀐 점도 급격한 유출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다.

최희남 기재부 국제금융정책국장은 "버냉키 발언 이후 자금유출에 대한 우려가 큰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외국인 채권매입에서 보이듯 한국은 경제 펀더멘털 측면에서 시장 움직임 폭이 큰 신흥국과는 여건이 다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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