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차인홍씨… 장애딛고 미 대학 교수로 ‘우뚝’

무대에서 더 빛나는 사람.
휠체어는 나의 날개라던 사람.
장애를 가진 한국인으로 미국 오하이오라이트주립대 교수가 된 사람.
바이올리니스트 차인홍(56·사진) 교수 얘기다.
차 교수가 지난 17일 청주를 찾았다. 25청소년 예술제에서 충청필청소년교향악단과 협연을 통해 충북의 예술꿈나무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방학을 이용해 대학과 교회 특강을 위해 지난 4월말 귀국한 차 교수의 이번 연주는 미국 유학시절부터 가깝게 지낸 이강희 한국교통대 교수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매년 2~3차례 정도 귀국하지만 늘 빠듯한 일정에 협연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예술 꿈나무들을 위한 자라라는 이강희 교수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연주가 청소년들이 꿈에 한 발 더 다가서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대전 출생인 차 교수에게 청주는 참으로 편안하고 익숙한 도시다. 오랜 친구 이강희 교수의 고향으로 한국에서 대전만큼 자주 찾은 곳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올 때 가장 설렌다는 차 교수는 그럼에도 한국에 살기는 아직 두렵다.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한국에 살면서 겪었던 상처, 그 아팠던 기억 때문이다.
음악 안에서 누구보자 자유롭고 당당한 차 교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시간은 비장애인보다 더 힘겹고 고단했다.
그는 소아마비로 2살 때부터 휠체어 생활을 했다. 당시 아버지가 아프고 어머니 혼자 6남매와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막내인 그는 장애인을 위한 대전의 성세재활원으로 보내졌다. 여기서 초등학교 5학년 때 바이올린의 선율을 처음으로 접하곤 서울대 음대 출신 바이올린 연주자 강민자씨에게 1년여 기간 동안 일주일에 한번 레슨을 받았다.
차 교수는 24살 때 검정고시로 모든 과정을 통과한 후 현대 아산재단의 후원으로 미국 신시내티대학과 뉴욕시립대학 브루클린대 석사 및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에서 지휘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831의 경쟁을 뚫고 미국 오하이오주 라이트주립대학의 바이올린 교수와 이 대학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됐다.
그의 이런 극적인 변신 뒤에는 연탄광에서 하루 10시간씩 바이올린 연습에 몰입했던 열정의 시간과 고통의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위해 애썼던 눈물의 시간들이 있었다. 누구보다 음악 안에서 자유롭고 싶어 견디고 노력했던 시간들이 그를 최고의 연주자로 서게 했다.
바이올린은 제게 기적 같은 선물이었습니다. 재활원에서 생활하는 초라한 소아마비 장애인이 가장 화려한 악기인 바이올린을 배운다는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것처럼 저도 음악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이면서도 음악가로서 명예를 얻을 욕심은 없다는 차 교수. 그의 유일한 꿈은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랑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분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가 장애인장학재단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서 성공은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과가 어떻든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성공이고 그 삶 자체가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삶이 어렵고 힘겨운 사람들에게 용기가 돼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958년 대전 출신인 차 교수는 국내는 물론 미국 전역을 비롯해 캐나다, 멕시코, 러시아, 브라질, 파라과이, 일본, 중국, 대만, 독일 등 세계 각국에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미국 오하이오 라이트주립대 음악과 종신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그의 공로를 인정해 우리나라 정부가 해외유공동포 대통령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자서전 아름다운 남자 아름다운 성공’, ‘휠체어는 나의 날개등이 있다.
·사진/김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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