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가옥, 선박 등 표현력·짜임새 탁월


충남 청양군 사찰 정혜사의 한 암자에서 금속 도구를 이용해 바위에 그린 세선각화(細線刻畵)가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그림의 내용으로 미뤄 삼국∼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1일 촬영한 세선각화 일부.

 



청양군 한 암자에서 금속 도구를 이용해 바위에 그린 세선각화(細線刻畵)가 발견됐다.

그림의 내용으로 미뤄 삼국∼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호석(56)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24일 청양 칠갑산 자락에 있는 사찰인 정혜사의 한 암자에서 바위에 가느다란 선을 새겨 넣어 그린 세선각화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풍경을 묘사한 세선각화로, 실경을 그려 넣은 암각화가 발견된 것은 드문 일이다. 국보로 지정된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刻石)만큼 연구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사암계통의 바위에 그림을 새겼으며 표면 크기는 가로 61㎝·세로 35㎝ 정도다.

울퉁불퉁한 바위 형태가 그대로 유지된 채 유독 그림이 새겨진 한 면만 평평해 그림을 위해 일부러 연마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상가옥 여러 채와 물 위에 떠 있는 선박, 나무, 홍살문 형태의 건물 등이 가느다란 선의 형태로 표현돼 있다.

세선각화 속 고상가옥은 여러 시각에서 건물을 바라본 것처럼 그려져 있다. 왼쪽, 오른쪽, 위(부감)에서 바라본 고상가옥이 하나로 조합돼 입체적으로 구현했다.

선의 굵기를 아주 조금씩 달리해 원근감을 주고자 한 흔적도 있다. 바위 위쪽 선이 아래쪽보다 상대적으로 얇아 위쪽으로 갈수록 거리가 멀어진다는 느낌이 들도록 표현했다.

선명하지는 않으나 '天'으로 추정되는 한자도 새겨져 있다.

전체 건물의 배치나 구도로 볼 때 세선각화가 발견된 산자락에서 바라본 풍경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호석 교수는 "마을이나 관부의 모습을 그린, 현대회화로 볼 때는 풍경화의 일종이 아닐까 생각한다"면서 "회화적인 요소로 볼 때 뛰어난 감각으로 그려진 그림"이라고 단언했다.

세선각화 확인 작업에 동행한 박희현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와 임세권 안동대 사학과 교수도 '연구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이들 전문가는 특히 수려하게 표현된 치미(용마루 양끝에 높이 달아 놓은 기와), 팔작지붕, 주춧돌 위에 세워진 기둥 모습 등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한국 선사고고학 전문가인 박 교수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부경(곡물창고)도 흡사한 형태로 표현돼 있다"며 "건축물 배치나 내용에 대해서는 더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암각화학회장을 역임한 임 교수도 "(건축물이)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그려져 있다"며 "상당히 흥미로운 세선각화 임에는 틀림없다"고 설명했다.

제작 시기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삼국∼통일신라 시대로 조심스럽게 추정했다.

고상가옥이 청동기 시대에도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대는 더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한자로 보이는 글씨가 새겨진 점, 불교 색채가 묻어 있는 연화 무늬가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정하기는 어렵지 않으냐는 의견을 내비쳤다.

김호석 교수는 "다방면의 연구를 통해 (제작 연대 등) 수수께끼는 풀릴 것"이라며 "구체적인 형상을 묘사한 세선각화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분명히 가치 있는 발견"이라고 말했다.<청양/박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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