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신성대학교 복지행정과 교수)

 정년을 얼마 앞둔 A교수는 악기를 배웠다. 시간 나는 대로 꾸준히 연습을 해서 본인이 듣기에 제법 그럴듯한 것 같아 용기를 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무대에 서고 보니 눈앞이 깜깜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열심히 연습했던 것과는 달리 남 앞에 서서 연주한다는 것이 엄청난 부담감으로 작용하더라는 것이다. 무대에 서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도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자기와 마찬가지로 떨린다고 하였단다. 그런데 그 사람은 막상 무대에 오르니까 진가를 발휘하였는데 정작 본인은 무대에 올라가서 죽(?)을 쑤고 말았다는 것이다. ‘프로와 아마추어는 이래서 다르구나’라는 것을 실감했다고 하였다.
 필자가 대학원 석사과정에 다닐 때 「한국행정론」이라는 책을 읽다가 서너 군데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논리적으로 연결이 잘 안되어 이해할 수 없었다. 해당 면을 복사하여 사연을 적은 다음 저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며칠 후 누런 행정봉투가 집으로 왔다. 당시 행정봉투는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시국이 그래서였는지 아버지께서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봉투를 건네셨다. 필자 역시 의아하게 생각하며 겉봉을 보니 잘 알아보기 힘든 글씨였지만 00대학교 행정대학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개봉을 해보니 책의 저자가 원고지에 답변을 써서 내가 보낸 복사물과 함께 보냈다. 희열을 맛봤다. 또한 행정학의 태두라고 불리는 분이 시골 대학원생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을 해준 것에 대한 감동도 밀려왔다. 그때 처음 ‘대가는 다르다’라는 생각을 했다. 이후 개정판이 나왔을 때 보니 필자가 의문을 제기한 곳을 다 수정하여 다시 한번 남모르는 기쁨을 느꼈다.
 신문을 보다보면 가끔 내용에 어울리지 않는 제목을 붙이거나 논리에 맞지 않는 글들이 있다. 주요 일간지들도 그렇다. ‘의도를 가지고 하는 구나’라는 생각도 때론 해보지만 신문사의 품격을 떨어트리고 기자의 자질을 의심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너무 아니다 싶을 때 글을 쓴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그런데 나오는 반응이 두 가지이다. 응답 메일을 통해서 게재내용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거나 사실관계에 대해 자기의견을 첨부하는 경우와 묵묵부답을 하는 경우. 그런데 의외로 급(?)이 있는 언론사 담당자들의 응답메일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사실 답변을 받기 위해서 메일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기 기사에 대해 끝까지 책임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프로정신을 가진 진정한 기자가 갖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 지도자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주변에는 시세에 편승하거나 줄을 잘 서서 혹은 부모를 잘 만나거나 운이 좋아서 지도자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도 있다. 민주사회에서 지도자가 되는 과정은 다양하기 때문에 불공평해도 뭐라 말하기 어렵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지도자가 지도자로서 자질을 함양하고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과 달리 공공부문의 경우 각종 통제장치가 발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대로 지도자들이 경계할 것도 알고 능력도 키우며 자기수양을 하는 것 같다. 문제는 사적부문에 많은 것 같다.
 자본주의체제가 자본과 노동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기준하에 개인의 창의력과 열정을 키워나가는 체제로 사회에 대한 공적 책임의식이 구현되는 사회라면 우리사회는 아직 멀었다고 본다. 생산수단으로 자본과 노동을 가진 각자가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 개인적 소유의식은 엄청난데 반해 사회에 대한 공존의식은 희박하다. 자기 몫에 대한 아귀다툼이 치열하다보니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여유가 별로 없어 그야말로 아수라장도 벌어지고 있다. 아마추어가 난무하고 무늬만 프로들이 나서는 경우도 태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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