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논설위원 · 청주대명예교수)

한 세대에 해당하는 3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동면하고 있던 지방자치가 부활 된지도 22년이 되었다. 성년의 나이가 넘어선 것이다. 과도기를 지나고 제도로 착근할 수 있는 기관형성(institutional building)의 단계로 발전할 수 있는 기간을 훨씬 넘긴 것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들 중에는 지방자치의 특성인 지역자결주의의 원리를 살려 민본행정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단체가 있는가 하면 많은 자치단체들은 아직 주민중심과 거리가 먼 미성숙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등 명암이 교차되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하여 흑자경영을 하고 있는 김천의료원, 민주당과 진보단체들로부터 제1공적으로 몰리면서까지 14년간 끌어온 진주의료원 문제를 ‘폐쇄 결정’이라는 강수로 대응한 경남도지사 등은 전자(명:明)에 속하고, 9.07의 재정자립도로 전국 244 지자체 중 236위인 열악한 지방재정인데도 불구하고 향토 출신 화가 그림 1점(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수묵화)을 걸어 놓으려고 25억 원을 들여 전용전시관을 짓고 표구 값으로 8,000만 원을 지불한 경상북도 청송군, 청주시 KT&G(옛 연초제조창 건물)를 매수하면서 예정가보다 100억 원을 더 주었다는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청주시,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 산업단지 조성 및 주택개발 등 대규모 투자 사업을 추진하였고 시행사에 대한 출자 승인신청을 하면서 이 사업으로 28억 원이라는 막대한 적자가 예상되는데도 임의로 분양가를 높여 187억 원의 순이익이 발생할 것처럼 허위보고를 한 충남개발공사,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지방의회 의결을 생략한 채 민간업체에게 채무보증을 해 주고 토지사용권을 확보케 한 음성군, 안전행정부(전 행정안전부)의 투자심리 절차를 밟지 않은 채 세 개의 지방 산업단지 확장사업, 한산모시 관련 집단시설 및 체육시설 설치사업, 구병산 관광지 조성사업 등의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한 천안시 · 서천군 · 보은군, 산업단지에의 입주가 금지된 업종을 불법으로 승인해 주었다가 뒤늦게 해지하는 어처구니없는 행정행위를 한 단양군 등은 암(暗)에 속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의 현주소이다. 이렇듯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선제적이고 예방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선진행정은 고사하고 행정의 ABC라 할 수 있는 법적절차이행 및 투입보다 산출이 큰 능률성 및 효과성의 도모라는 기초적인 행정관리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는 앞을 향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지방행정의 시계바늘은 정지 상태이거나 뒤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지자체는 지역고권(地域高權)의 권위를 상실하게 되고 국민들로부터 예산낭비 및 효율성의 저하를 초래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심지어 지방자치무용론까지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정체성 및 존재가치가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일정지역에 대한 살림을 책임지고 꾸려나가야 하는 헌법기관이다. 그래서 지방정부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안전과  권익보호 등을 주요임무로 하듯이 지방정부는 해당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의 안전과 권익보호 등의 임무를 본무로 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국가기관인 것이다. 그렇기에 지역행정은 지방행정의 본질에 맞는, 그리고 지역이 곧 세계라는 관점의 세방화(世方化:glocalization) 및 18대 박근혜 정부가 선포한 ‘국민이 원하는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정부 3.0비전’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협치(協治:governance) 등을 기조로 전개되어야 한다. 지역은 세계화의 주체라는 지역관, 주민이 주인이라는 주민관, 주민의 안전 확보와 권익 보호를 최우선의 임무로 삼는 지역행정관, 주민이 낸 세금은 주민복지창출을 위하여 한 푼도 낭비됨이 없이 사용한다는 공직윤리관, 지역은 소득과 복지의 보고(寶庫)로서 자손만만대의 삶의 터전으로 가꾸어져야 한다는 공간개발관, 자율성과 책임성 등의 전제하에 양질의 정책이 산출되고 주민행복의 극대화를 도모한다는 지방자치관 등이 구현되게 하여야 한다.
지역행정은 무사안일주의적, 수비주의적, 행정편의적, 두루뭉실적, 주먹구구적 행정행태에서 탈피하여 개척적, 선제적, 주민중심적, 주도면밀적, 과학적 행정행태로 과감히 전환되어야 한다. 명실공이 지역복지의 기수로서의 책무를 다하여야 한다. 지방행정에의 기업경영마인드를 접목한 김천의료원이나 잘잘못을 떠나 긴 세월 방치되었던 진주의료원 문제해결을 위하여 단호한 조치를 취한 경남도지사의 소신 및 책임행정의 실천 등은 자치행정의 진로에 의미 있는 메시지(significant message)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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