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일 (극동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

  “고객님! 당황하셨어요?”

  보이스피싱을 소재로 한 개그콘서트(KBS2) 새 코너 ‘황해’에 나오는 대사이다. 하지만 정작 당황한 사람은 고객이 아니라 전화를 건 가짜 상담원이다. 전화로 사기를 치려다 어눌한 한국말 때문에 맨날 들통 나는 이들의 어설픈 행각이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발하곤 한다. 지난 5월 26일 첫 방송부터 화제가 되더니 2주 만에 개콘 코너별 시청률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초기에는 중국 동포들을 비하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일었다. 하지만 이제는 경찰청의 협조로 갈수록 진화하는 사이버범죄에 대한 알리미 역할을 하고 있다.

  정작 성실하게 살아가는 중국 동포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것은 최근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괴담들이다. 얼마 전에는 페이스북에 ‘건국대 장기매매 사건’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건국대 앞에서 술을 마시다 합석한 조선족 여성들에게 속아 장기를 적출당할 뻔 했다는 내용이다. 실명으로 쓴 글인 데다 구체적인 지역과 업소명이 등장하다보니 일파만파 퍼져나가 삽시간에 6만여 명이 ‘좋아요’를 눌러 추천했다고 한다. 하지만 불과 11시간 만에 이 글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경찰청 온라인소통계의 당직경관이 이 글을 보고 관할 경찰서는 물론 인근 경찰서에까지 확인을 요청한 결과 사실무근이었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작년 7월에는 제주도에서 조선족 9명이 여자 2명을 납치했다는 글이 인터넷에 퍼졌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서귀포에 사는 한 여중생이 친구의 말을 듣고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린 게 발단이었다. 8월에는 경기도 의정부에서 묻지마식 흉기 난동사건이 일어났는데 범인이 중국 동포라는 소문이 퍼졌다. 범인이 한국인임에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서는 정부와 언론이 다문화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이번 사건을 의도적으로 은폐하려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심지어 작년 9월에는 어린아이가 있는 맞벌이 부부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괴담까지 등장했다. 한 조선족 베이비시터가 돌보던 아기를 납치해가자 충격을 받은 한국인 부부가 자살을 했다는 메시지가 카카오톡으로 전해진 것이다. 여기에 “우리 남편 회사 동료가 직접 겪은 이야기”라거나 “남편이 경찰인데 민감한 사안이라 쉬쉬하는 중이래요”는 식의 댓글이 달리면서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이런 현상은 작년 4월 수원에서 발생한 오원춘 사건 이후 유독 심해지고 있다. 당시 엽기적인 살인행각을 벌인 범인이 중국 동포였음이 밝혀지고 살해동기를 둘러싼 해괴한 추측들이 난무하면서 이들에 대한 거부감이 심화된 것이다.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에 대한 괴담의 만연은 단순한 혐오의 수준을 넘어 심각한 사회적 차별을 야기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고대 로마의 네로 황제는 기독교인들을 로마 대화재의 방화범으로 지목했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을 제물로 삼았다. 우리 민족도 당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1923년 일본은 관동대지진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조선인에 대한 온갖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이들 괴담의 희생자들은 아무런 죄도 없이, 심지어 이유도 모른 채 핍박을 받았다.
  지나친 기우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류의 괴담은 반복적으로 주입되면서 어느 순간 사람들의 뇌리에 돌이킬 수 없는 지독한 편견을 각인시킨다. 지금도 유럽의 스킨헤드족이나 신나치주의자들, 일본의 혐한론자들은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왜 그렇게 분노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더 무서운 것은 이들이 평소에는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잠재되어 있는 뇌관에 불이 붙는 순간 엄청난 분노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어떤 허황된 괴담이 이들의 뇌관을 건드리는 방아쇠로 작용할지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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