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때 일본 수뇌부 야스쿠니 참배 여부가 중대 변수

한·일 외무장관 회담이 양국 정권교체 이후 처음 열렸지만 한·일 관계의 앞날은 안개 속이라는게 두 나라의 대체적인 기류다.

'누가 먼저 회담을 제의하느냐', '아쉬운 쪽이 누구냐'는 등을 둘러싼 자존심 싸움 끝에 1일 브루나이에서 외무장관 회담을 열긴 했지만 양국 관계를 뒤틀리게 한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 양측이 평행선을 그리고 있어 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될 한·일 정상회담 개최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 4월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침략의 정의는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해 한국의 거센 반발을 샀다. 문제가 커지자 아베 총리는 5월 국회에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아베 정권으로서는 전체로 계승해 나간다는 것"이라며 말을 바꿨지만 '침략을 인정한다는 뜻이냐'는 질문에는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일본 정부는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 계승 의사를 밝힌 만큼 더 문제시될 것이 없다는 태도지만 한국 정부는 아직 진의가 분명히 확인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한일관계 악화의 또 다른 요인이 된 정부 요인들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문제도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측 공히 '기회비용'을 감수해가며 시급히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설 의지를 가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말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일본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누차 역사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일본의 태도변화를 촉구했다. 역사 문제에 관한한 원칙적인 입장을 쉽게 바꾸지 않을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아직 정권출범 초기인 만큼 한·일 관계 개선에 급하게 나서기 보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는 쪽이 중요하다는 것이 정부 내부의 기류라고 전했다.

또 2일자 니혼게이자이, 요미우리 신문 등에 따르면 무리를 하거나 양보를 하면서까지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것이 아베 총리의 인식이라고 주변 인사들은 전했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한·일 정상회담 전망을 질문받자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먼저 외무장관 회담이 열렸다"며 "그런 것을 거듭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서두르지 않을 뜻을 밝혔다.

현 상황에서 한·일 정상회담만을 위해 양국 정상이 상대국을 방문하기에는 부담이 클 것인 만큼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 사이의 첫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그 무대는 다자회의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외교 당국자들은 전망한다.

하반기의 주요 정상외교 일정으로는 9월 러시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유엔 총회, 10월 브루나이에서 열리는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 올해 한국에서 열릴 순서인 한·중·일 정상회의(일정 미정) 등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광복절이자 일본의 패전일인 8월15일에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 요인들이 야스쿠니를 참배할 경우 당분간 정상회담 개최는 어려울 것으로 정부 당국자들은 보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6일자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오는 8월15일과 추계 예대제(例大祭) 때의 야스쿠니 참배 여부에 대해 "나라를 위해 싸운 군인을 위해 명복을 비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참배할지 여부 그 자체가 정치적, 외교적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갈지 안 갈지 말씀드리지 않겠지만 제1차 총리 임기 중에 참배를 못한 것이 '통한의 극치'라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며 불씨를 남겨 뒀다.

아베 총리가 가지 않더라도 내각의 2인자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와 같은 정권 핵심인사가 야스쿠니를 방문할 경우 한·일 관계에는 파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한국 정부는 지난 4월 윤병세 외교장관의 일본 방문을 계획했다가 아소 부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이유로 취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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