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연 기(한국교통대 교수)

최근 일부 대학가는 대학구조조정이라는 미명하에 인문 및 예술 계열을 포함한 전통적인 학과들에 대한 폐과 조처로 심한 홍역을 앓고 있다. 대학 측에서는 이 같은 구조조정이 해당 학사조직의 낮은 신입생 충원률과 취업률로 인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이에 반발하는 해당 교수들과 학생들은 대학을 시장논리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학문 추구라고 하는 대학 본연의 목적을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지난해 한국대학교육연구소가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통계서비스 대학통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999년과 2011년 학과 개설 현황을 비교했을 때 철학·윤리학 25개, 프랑스어·문학 16개, 독일어·문학 13개 학과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기간 동안 지속적인 대학 구조조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계열에 상관없이 대학의 학과나 학생 수의 감소가 이루어져 왔지만 영어 및 중국어를 제외한 제2외국어 문학,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계열의 축소는 두드러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학 역시 수요와 공급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할지 모른다. 대학의 구조조정을 둘러싼 작금의 상황은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률, 신입생 등록률, 중도 탈락률과 같은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대학평가의 지표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특히 취업률 측면에서 인문 및 예술 계열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정부 지원금에 대한 의존을 고려할 때 지방대를 중심으로 한 현재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대학에 대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제기한 지는 꽤 오래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필요성이 과거에 이루어졌던 대학의 단순한 양적 팽창, 백화점식 경영에 의한 부실 사학의 양산에 있었다고 한들 지금에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정리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고등교육법 상에서 명시된 대학의 설립 목적은 인격을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한다는 것인데 전문 직업 분야의 인력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전문대학원을 제외하고는 그 어디에도 취업이라는 말은 없다. 오히려 과거에 존재해 왔던 산업대학의 경우 산업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학술 또는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의 연구와 연마를 위한 계속 교육기능을 담당한다는 설립 목적이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취업률 중심의 대학 평가체계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업률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교과부의 대학 관련 지원사업의 평가 기준은 고등교육법 상의 대학의 설치 목적과는 다소간의 모순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이었던 틸만 교수는 대학 교육을 특정 전공을 위한 준비가 아닌 그 어떤 전공 분야라도 준비할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다시 말해 4년간의 대학 교육이 학생들로 하여금 특정한 목표를 위한 자신의 이력서를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 아닌 원대한 지적 모험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보편적인 교양 교육(liberal arts)에 기반 한 것으로 열린 마음과 비판적으로 새로운 상황을 분석하는 사고력을 가르친다는 프린스턴 대학의 교육 목표와도 일치하는 말이다. 최근 국내 대기업을 중심으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통섭형 인재를 선호하는 경향이 알려지면서 인문 계열 학과를 폐지하고자 하는 대학의 구조 개혁 방향과는 반대로 없어져 가는 인문학 강좌가 서둘러 개설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 스스로가 대학의 중·장기 발전 계획과 같은 마스터 플랜이나 대학 교육 또는 학문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나 철학이 부재한 상황에서 임기응변식 대응으로 대학 구성원들의 혼란을 유발했는지를 돌아볼 일이다.

지금의 대학 현실에서 취업률을 도외시하고 순수한 학문 교육과 연구에 따른 수월성만을 강조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대학 구조 조정의 물결 속에 대학 고유의 기능이 상실되지 않았으면 한다. 다행히 최근 교육부에서는 대학평가 시스템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대학구조조정의 방향과 방법을 새롭게 수립 중에 있다고 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현행 대학평가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다시 짜야 할 상황임을 인식하고 지표에 의한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꾸고 단순히 취업률 지표를 조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전반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하였다. 새롭게 마련되는 대학평가시스템이 과거에 비해 대학이 가지는 본연의 학문의 교육과 연구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사회적 수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데 도움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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