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순 자 충북육상연합회 부회장

사람들은 인생을 흔히 마라톤에 비유한다. 목표를 향해서 가는 혼자만의 싸움. 뛰다가 힘에 부쳐 걷는 순간도 오지만 결국 목표점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수술후유증으로 정상생활을 하지 못하던 주부가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9년 동안 100여회가 넘는 마라톤대회에 참가, 화제다. 

마라톤으로 두 번째 인생을 사는 최순자(여·54·청주시 흥덕구 모충동 두산한솔아파트·☏010-2004-3101)씨. 

공무원이었던 최씨는 결혼후 공직을 떠났다. 가정주부로 생활하던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9년 전 산부인과 수술을 받은 이후 수술후유증을 앓게 된 것이다.

“몸이 아파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의사가 다른 장기를 떼 버렸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죠. 멀쩡히 있던 장기가 사라지니 심한 부작용도 앓았어요.”

그는 의료사고로 인해 평생 약을 먹어야 할 처지가 됐다. 수술후유증으로  3개월 만에 체중이 10kg이 늘어났다.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였다. 최고혈압이 207mmHG를 기록할 정도로 혈압이 높아지는 등 정말 시련의 연속이었다.

살을 빼기 위해 청주 무심천을 찾아 달렸지만 100m를 채 달리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었다. 무심천을 달리다 보니 아는 사람도 늘어났고, 마라톤 동호회와 인연이 닿아 2004년 마라톤에 입문,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단순히 살을 뺄 생각에 무심천을 찾아 달렸는데, 정말 기분이 좋아졌고 계속 달리고 싶어졌어요. 또 함께 달리는 사람들과 인연이 돼 동호회에 가입했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마라톤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새벽 4시에 일어나 무심천을 뛰다 보니 점점 실력이 늘기 시작했다. 100m 채 달리지 못하고 헐떡거렸던 최씨가 1km를 거뜬히 달렸고, 꾸준히 연습한 끝에 하프마라톤에 출전하는 ‘마라토너’가 됐다. 입문 6개월 만에 서울 광화문을 달리는 풀코스마라톤에 도전했고, 42.195km를 완주했다.

“서울에서 열리는 마라톤은 대부분 교통 혼잡 문제로 5시간이 지나면 하위그룹 선수들을 중도 탈락시키는데 다행히 전 가까스로 결승점을 통과 했습니다. 힘들게 완주에 성공하고 나니 눈물이 나고 희열이 느껴지더라고요.”

용기를 얻은 그는 풀코스 30여회 단축코스 70여회 등 100여회가 넘는 마라톤대회에 참가했다. 지난 4월에는 11회 청남대 울트라마라톤에 참가, 완주에 성공하며 ‘철의 여인’이 됐다. 이 대회는 청남대를 출발, 문의대교를 거쳐 다시 청남대를 돌아오는 코스로 참가자들은 100㎞를 달려야 한다. 이 대회에서 13시간20분을 기록하며 결승점을 통과했다.  

당시 새벽에 장대비가 내리는 등 악천후로 520명의 참가자 중 115명의 탈락자가 나왔지만 최씨는 묵묵히 달렸고, 완주의 희열을 맛봤다. 몇 번째인지는 상관없다. 도전에 성공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마라톤은 혼자만의 싸움이에요. 아무도 도와줄 수 없죠. 매 대회 때마다 너무 힘든 마음에 ‘다시는 마라톤 안한다. 왜 내가 고생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도 하지만 막상 완주에 성공하면 정말 기뻐요. 그래서 사람들이 마라톤을 하는 것 같아요.”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불행했던 최씨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몸무게는 정상을 되찾았고, 혈압도 낮아졌다. 현재 충북육상연합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최씨는 육상이론도 공부, 육상연맹의 정식심판 자격증을 획득, 심판으로 활동하고 있다.

딸 한현화(24)씨는 최근 자기소개서에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엄마’를 꼽았다. 아픔을 딛고 일어나 누구보다 행복하게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존경스럽다고 했다. 지난 반기문마라톤 대회에서는 모녀가 나란히 참가했다.

청주시설관리공단 주차관리요원으로 일을 하고 있는 그는 “80살이 넘어서도 마라톤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냥 달리고 싶다면 1㎞만 뛰고, 또 다른 인생을 경험하고 싶다면 마라톤에 도전하라”는 전설적인 마라토너 에밀 자토펙의 말처럼, 그는 마라톤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 글/이삭·사진/임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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