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은순(문학평론가)

 우연히(?) 제천에 있는 작은 관광호텔을 인수하게 되었다. 가까운 친구가 은퇴 후 숙박업을 해보고 싶다고 해 바쁜 그를 대신해 잘 아는 부동산을 통해 내가 물건을 보러 다니게 되었다. 평소에도 호기심이 많은 나는 나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에도 깊은 관심을 표명해 둘러보기를 좋아하는데 이번에도 그런 경우였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이런저런 업소를 둘러보다가 제천에 있는 호텔을 보는 순간 마음에 강한 충격이 왔다. 어쩐지 처음 와 보는 곳 같지 않았고 마치 오래 전 부터 알고 있는 곳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순간적인 통찰을 중시하는 나는 깊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첫째는 전혀 이 분야에 경험이 전혀 없는 내가 과연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금전적인 문제였다. 전혀 준비 없이 직면한 문제라 당연한 갈등이었다. 전문 부동산 중개업자가 삼십년 평생 다녀 보아도 이렇게 좋은 물건은 처음이라며 객관적인 조언을 해 준 부분도 비중이 컸다.

 결국 고민 끝에 계약을 하고 호텔 인수를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전혀 비상식적이고 터무니 없는 일을 진행하면서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전혀 근거 없고 알 수 없는 자신감이었다. 세달 동안 일을 진행하면서 상식적인 판단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 결국 호텔 인수 작업을 마무리 하게 되었다.

 그동안 조용하던 내 일상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여러 차례 제천을 드나들며 이른 시간 기차를 놓쳐 다음 차를 타고 간 적도 여러 차례 있었고 곤히 잠이 들어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친 적도 여러 차례였다. 제천 관공서에 일을 보러 갔다가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겨 허둥대느라 그동안 애써 준비한 서류들을 두고 가는 바람에 몇 시간을 돌고 돌아 천신만고 끝에 서류를 다시 찾은 일도 있다. 결국 서류를 찾았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많은 시간의 노고가 헛수고가 될 뻔했다.

 이때 몇 년 전에 작고하신 장영희 교수의 글이 떠올랐다. 오래 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을 준비하던 중 그동안 어렵사리 유학생활을 하며 쓴 박사학위 논문이 든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렸다. 그때 장교수의 황당함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절망감을 딛고 내 인생에서 몇 년 박사논문이 늦어진다고 해서 큰일 날 것은 없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고 다시 용기를 내서 논문을 마무리 했다고 한다.

 일을 진행하며 삶의 모든 과정에는 알 수 없는 허방이 도사리고 있는 터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난관을 헤쳐 나갈 것인가가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무료하지만 조용한 삶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며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삶을 살 것인가 하는 것은 결국 각자의 몫이라는 생각도 새삼 들었다.

  호텔 인수 작업을 마무리하고 제천에 내려온 나는 당분간(?) 제천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십삼만 인구의 작고 아담한 도시인 제천은 누구보다 소박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관공서에서 마주친 얼굴이나 거리에서 혹은 산책로 등지에서 마주친 이들은 모두 자연의 모습을 닮았다. 자연치유의 도시답게 은은한 약초 향과 원시의 내음이 솔솔 풍겨 나오기도 한다.

 


 내가 처음 호텔을 인수해 영업을 시작하던 날, 제천 공단의 한 업체 손님으로 미국인 한 사람이 투숙을 했다. 프론트 직원을 통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우연히 로비에서 그를 마주치게 되었다. 영어로 말을 건네자 그는 한국에서 두 번째로 영어를 하는 사람을 만났다며 아주 반가워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6년을 살았다고 하자 더욱 반가워했다. 이튿날 내일을 돕고 있는 후배가 복도에서 그를 만났는데 나를 찾더라고 했다.

 앞으로 호텔을 운영하며 내가 바라는 것은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크게 사업을 확장 하려는 것도 아니다. 내 호텔을 찾은 외로운 이방인들에게 작은 감동과 기쁨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십 년 넘게 나와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 후배가 내 일을 돕고 있어 마치 함께 새로운 곳으로 이사 온 느낌이 든다. 현재 가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내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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