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길(논설위원, 소설가)

 법조문에는 미사여구가 없다. 자의적 해석을 최소화하고 의미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형용사가 절약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같은 법조문해석에 이견이 나오는 사례는 없지 않다. 거개의 국가가 재판에 복심제를 취하고 있는 것은 원고와 피고 어느 쪽에도, 판결권자의 법조문해석의 차이로 인한 억울함이 없도록, 공정을 기하기 위함일 것이다.     면도날처럼 예리하게 선악과 가부, 정오를 규정한 법률 해석에도 이렇듯 차이가 있거늘, 하물며 회담녹취록이나, 몇 다리 건넌 사석의 ‘밀담’을 놓고, 그 진의를 따지자면 해석은 더 다양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여야가 승산 없는 정쟁에 열을 내고 있는 건, 진실규명을 위함이 아니라, ‘말’에 ‘자의적 해석’을 붙여 상대를 곤경에 몰아넣고 자신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기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의적 해석에 왜곡과 허위가 더해지면 방향은 엉뚱한 곳으로 빗나가게 마련이다. 냉철한 이성으로 해석해도 ‘말’의 진의파악에 다자일치를 이루기가 쉽지 않은데, 기 싸움으로 변질되고 보면 규명은커녕, 서로 상처만 입고 주변까지 피곤해진다. 정쟁은 일종의 자해행위요 국민들까지 피곤하게 한다는 얘기다.

 ‘국정원 댓글’사건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진실여부를 놓고 국회가 지금, 그렇게 치열한 기 싸움을 하고 있다. 진실은 하나뿐일 텐데, 거기에 자의적 해석과 판단으로, 여야가 서로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격렬한 정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조사가 가동되게 됐지만, 과정이 그렇게 순탄하게 진전 될 것 같지는 않다. 여야의 조사위원자격에서부터 논쟁을 벌이고 있으니, 공방전은 출발부터 제 길을 이미 벗어났다. ‘댓글’의 불법성 여부를 가리기 위해 검찰이 기소했지만, 사법부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책임론 먼저 들먹인다. 남북정상회담 녹취록 공개 후, 거개의 국민이 허탈과 치욕을 느꼈지만, NLL 포기 발언의 진위는 제쳐두고 녹취록 공개과정과 ‘조작 가능성’이 논란의 주제로 변했었다.

 결국은 어렵게 가동될 국정조사도 명확한 결론에 접근하기는커녕 수시로 불거지는 곁가지, 사실자료의 판단에 아전인수식 해석과 말꼬리물기로 오락가락 논란만 커질 것이다. 여야가 다투어 강경 저돌형 인물을 앞세우려는 것도 진실규명보다 기선제압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내 발은 빼고 상대를 구렁에 밀어 넣겠다는 저의가 훤히 보이는 싸움이다. 그러니, 어렵게 결론에 접근한다 해도 어느 한 쪽이 불복, 새로운 논란의 빌미를 만들 것이다.

  국정질의를 위해 불러 앉힌 장관을 옆집 선머슴 나무라듯 호통 치는, 그렇게 위세 당당한 의원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조사결과에 고분고분 승복하리라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역대 국회에서 실시한 국정조사 21건 중 마무리 지은 건 8건 뿐, 한보사건을 비롯한 13건은 결론 없이 흐지부지 되고 말았단다. 소리만 요란하고 개먹을 건 없는 설사였던 셈이다.   지난 6월 26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원본을 공개 해 소모적인 논쟁에 종지부를 찍자’고 했다. 새누리당도 이를 환영했다. 이제 원본공개가 가능하게 됐으니, 노 전 대통령의 발언진의와 ‘조작’여부까지 규명 돼야 마땅하지만, ‘포기’라는 단어 찾기와 문맥상의 ‘의미’를 놓고 새로운 논쟁을 벌일 테니, 종지부 찍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터이다.   이제 임시국회도 끝났다. 7,8월 무더위로 장기 휴회에 들어갈 것이다. 등원할 필요 없고, ‘의원특권 내려놓기 법안’ 통과로 의원들이 단상점거나 폭력행사도 못 하게 됐으니, 혹시 원외투쟁 한답시고 거리에 나와 팔뚝질하며 여론몰이 선동에 나선다면, 거기에 색깔 수상한 사람들이 촛불 들고 나설까봐 그게 또 걱정이다. 국정조사, 그거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론이 나올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어떤 결론이 나오던, 여야가 모두 승복하고 ‘소모적인 논쟁’ ‘이제 그만합시다.’라는 거개 국민의 여망을 따르는 게 의원들 점수 따는 길이고, 정치쇄신에 다만 한 발이라도 다가서는 길이다.

 대통령의 순방외교 후 우리가 해야 할 당면과제와, 진정이 통하지 않는 대북관계에 돌파구를 만드는데 여야가 합심해도 묘책이 쉽지 않을 판이다. 산적한 민생사안도 여야 의원들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세계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데, 국회가 계속 정쟁으로 허송할 건가? 

 ‘의원님, 의원님 열 내지 마.’ 이건 보양식품을 권하는 애처가의 로고송이 아니라, 의원님들의 상생정치 모습을 보고 싶은 국민들의 합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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