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과 휴가 ‘백배 즐기기’
하루키 새 장편 ‘색채가 없는…’ 등 추천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됐지만 지루하게 이어지는 장마 덕분에 야외 활동이 꺼져진다. 이럴 때 가장 좋은 피서는 단연 독서다. 출간 첫 주 판매 1위에 오른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 장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나 조용호 소설가의 소설집 떠다니네등 휴가철에 읽으면 좋을 신간을 소개한다.

  하루키 새 장편과 인간 내면 탐험

부주의를 포함한 어떤 의도가 누군가의 가슴에 깊은 칼자국을 내는 일은 심심치 않다. 칼을 맞은 사람은 실제로 가슴에 칼자국이 남은 것처럼 오랜 시간 고통에 인생을 저당잡힌다.

그 칼자국은 어떤 사람의 인생을 반으로 쪼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건의 이전과 이후에 자신이 더는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 장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서른여섯 살의 다자키 쓰쿠루가 격렬한 상처로 남은 과거의 사건과 그 사건에 맞물린 타인들을 마주하며 눈이 깊어지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린다. 소설은 여럿의 욕망과 불안이 어지럽게 뒤섞여 흔들리는 인생의 한복판에서 한 인간이 고통을 대가로 얻게 되는 어떤 시선에 대한 것이다.

16년 전 쓰쿠루는 모든 걸 함께 나누던 고교 시절의 공동체에서 추방당했다. 이유도 모른 채 더는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나머지 네 친구의 차가운 전화 속 목소리로 절연 당했다. 그동안 함께 나눠온 마음이 무색하도록 쓰쿠루는 단칼에 잘려나간다.

쓰쿠루가 스스로 축축한 돌 아래에서 살아가는 하잘것없는 벌레’(153)처럼 여기는 것도 무리가 없다. 1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쓰쿠루는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한 친구를 제외한 나머지 세 친구를 찾아가 자신이 외면당한 이유를 묻는다.

기막힌 대답들이 나오지만, 이 대답들 속에는 그 시절 피할 수 없었던 각자의 불안과 복잡한 심사가 새어나온다. 지독히 이기적이지만 지독히 인간적이어서 의도와 행위가 타당했는지를 저울질하고 따져 묻는 일이 무력해진다.

이들이 쓰쿠루에게 잘못한 건 확실하다. 이들이 제 잘못을 조금이라도 보수할 수도 있었던, 그러나 해명도 사과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16년의 세월까지 합치면 용서받기 어려운 잘못이다.

하지만 저마다 나약한 인간으로서 품은 상처와 어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에서 파생되는 복잡한 경로의 욕망과 불안이 잘못된 돌을 놓을 수 있다는 걸 한주먹만큼 받아들일 때, 치유됐다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인생의 좀 더 깊은 자리로 내려갈 수는 있다고 하루키는 말하고 싶은 것 같다.

하루키의 신작은 ‘1Q84’ 이후 3년 만이다. 일본에서는 412일 발간돼 일주일 만에 100만 부가 팔렸다. 한국어판은 민음사가 판권을 확보해 전문번역가 양억관씨가 번역했다.

민음사, 440. 14800.

 

조용호 새 소설과 이별 여행을

낚시 중에 기다리는 우럭 대신 남자 가방이 걸려 올라온다. 녹슨 가방엔 모란무늬를 새긴 코끼리 형상의 향로가 들어 있다. 추석을 맞아 귀성객을 가득 태우고 서해를 건너다 침몰한 페리호 속에서 13년을 묵다가 물 위로 올라온 향로다.

향로를 낚은 남자가 가방 속 물건들로 짐작해 향로를 돌려줄 사람을 찾아간다.

가방 주인의 아내로, 지금은 다른 남자와 결혼해 섬진강변에 사는 여자다.

눈앞에 향로를 내려놓자 여자가 눈물 흘린다. ‘그동안 혼자 지냈느냐는 물음에 여자는 새 남편과의 인연을 말한다. 세상 떠날 날짜 받아 놓고 오늘내일 하는 노모를 위해 평소 좋아하던 매향이라도 맡고 가게 해주고 싶어 도둑처럼 매화꽃을 따던 남자다.

졸지에 남편을 서해에 묻은 여자도, 노모와 헤어질 목전에 놓인 남자도 이별로 겪는 서로의 깊은 고통을 이해했을 것이다. 여자는 말한다.

서해를 물들이는 지는 해의 빛은 마지막처럼 서러운데, 저 강물에 드는 빛깔은 희망을 줘요. 살아라, 살다 보면 반드시 다시 만난다, 다만, 견디어라, 견뎌라……. 그렇게 붉게, 울어요. 이승에서 만난 인연들은 흘러가는 저 강물처럼 서로 엉겨 부딪치고 소용돌이치다가 고요하게 바다에서 만나는 거라고, 저물 무렵이면 강물이 귓전에서 속삭여요.”

소설가 조용호(52)씨가 8년 만에 펴낸 소설집 떠다니네모란무늬코끼리향로에서 여자는 향로를 바다 속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을 것을 부탁한다. 쉬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과 마음, 그러나 흘러간다고 사라지지는 않을 어떤 아련함이 여자의 말에 담겨 있다.

표제작엔 초등학생 아이를 사고로 떠나보낸 후 고통 속에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를 두고 충동적으로 여행을 떠난 남자가 등장한다. 여행지에서 남자는 씨앗이 물에 떨어져 3개월 정도 떠다니다가 최적의 장소를 찾아 물속에 뿌리를 내린다는 맹그로브 나무를 만난다. 참척의 고통과 이혼의 예감 앞에서도 남자의 생각은 허튼 곳으로 튀어간다. 맹그로브만 못한 것이다.

소설집에는 단편 7편이 실렸다.

작가는 맹그로브에 비하면 인간은 부박한 편이다. 몸이 뿌리를 내려도 마음이 떠돈다. 맹그로브 씨앗이 바닷물에 떠다니는 이유는 분명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은 죽을 때까지 떠다니는 숙명을 벗을 길 없다. 떠나온 곳을 모르니 돌아갈 곳인들 알겠는가라고 썼다.

민음사, 208, 12000.

<김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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