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길(논설의원, 소설가)

 1945년, 일본 패망 후, 한반도에는 광복의 기쁨과 동시에 어두운 그림자가 덮쳤다. 이른바 신탁통치. 38선 이북은 소련이, 이남은 미국이 일정기간 점령하여 정부수립을 돕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련은 남북한 총선거 실시를 위한 유엔한국위원단의 입북을 거부하고 48년 2월 10일, 일방적으로 조선임시헌법을 제정, 북한 단독정부를 세웠다.

 같은 해 5월10일, 남한은 뒤늦게 총선을 실시, 대한민국정부를 수립하고 헌법을 제정, 7월 17일 공포함으로써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게 되었다.  

 자유당정부의 부정부패로 인한 4.19의거 후, 3개월의 과도정부를 거쳐 탄생한 민주당 정부는, 무한자유와 기아해방을 원하는 국민의 과잉기대를 진정시키기에는 너무 유약했다. 거리는 연일 데모로 출렁이고, 용공세력은 중립통일과 남북협상을 선동하며 ‘평양에 가자’는 구호를 공공연하게 외치는 무정부상태가 되었다. 그 와중에 김일성은 함흥의 군중대회에서 ‘조국의 평화통일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장담했다. 그럼에도 장면총리는, 윤보선 대통령의 난국수습대책협의를 거절하고 갈팡질팡하다가 결국은 5.16을 맞았다.

 4.19혁명으로 하야, 망명지에서 여생을 마친 이승만은, 부정부패를 막지 못하고 독재의 오명을 남겼지만,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대한민국 정부태동(胎動)을 가능케 한 대통령이었다.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장악, 측근의 배신으로 비통한 최후를 맞은 박정희는, 비록 유신독재의 오류를 남겼지만, 위태롭던 난국을 수습하고 기아와 허탈에 빠져 자포자기했던 국민에게 자립의지를 심고 굶주림을 면하게 한, 풍요한국의 태동(胎動)을 가능케 한 대통령이었다.

 근자에 위 두 전 대통령을 폄훼하는 말들이 정가를 출렁이게 하고 있다. 발원지는 물론 야당과 그 언저리의 진보세력권이다. 내용은 억지 과장이요 그것도 저질 악담수준이다.

 지난 해, 어떤 진보인사는 이승만 정부를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정부’라고 했다. 지난 7월11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태어나지 않아야할 사람(鬼胎)’이라고 했다.

 전자는 대한민국 정부의 근간, 국가의 정체성과 국민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망언이요, 후자는 박정희 개인과 그가 행사한 국권, 그를 선출한 유권자와 후손인 현직 국가원수까지 모독한 막말이었다. 그래야 ‘진보답게’ 튄다고 생각 했던지, 두 전직 대통령이 남긴 여러 공과 중에 공(功)은 깡그리 뭉개고 과(過)만 침소봉대하고 왜곡해서 최악의 표현법을 쓴 것이다.

 만약, 유엔한국위원단의 입북을 가로막은 소련의 입맛대로 세운 공산당정부에 한반도 전역통치를 맡기고 대한민국정부수립을 포기 했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만약에 5.16이 없었더라면 무정부상태에 이르렀던 사회혼란이 어떤 결과를 낳고, ‘평화적 통일’을 장담한 김일성은 무슨 짓을 저질렀을까? 상상은 어렵지 않고 그게 현실화 되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김일성은 그 때, 6.25 때 이루지 못한 야욕을 달성, 한반도 전역을 세습왕조의 영토로 굳혔을 거고, 온 국민은 기아에 허덕이며 무한자유와 평등을 외치던 무리들은 효용가치를 잃고 숙청, 처형 되거나 ‘수용소’행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정치인들에게 기자의 카메라가 접근하면 표정이 달라지고, 마이크를 들이대면 억양이 달라진다고 한다. 돋보이기 위한 노력이라는 건 기자 아닌 사람들도 다 안다. 굳이 탓할 일은 아니지만 카메라 앞에서 폼 잡는 노력 보다 좀 더 가치 있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면 어떨까? 국민행복을 위한 정책개발에 진심갈력하고, 남의 오점 까발리고 폄훼하는 막말, 튀는 말이 아닌, 과거와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품위 있는 말솜씨 닦기에 노력한다면 사진발 잘 받는 것보다 두루 유익할 것이다.

 돋보이고 튀어 보려는 것은 보편적 인간이 지닌 인정의 욕구가 원인이다. 하지만 넘치다보면 돋보이기는커녕 화근이 된다. 남 앞에 나설 일이 많은 정치인들에겐 더욱 그렇다.   

 당나라 말기 정치가 풍도(馮道)의 설시(舌詩)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입은 화가 들어오는 문이요(口是禍之門), 혀는 제 몸을 베는 칼이다(舌是斬身刀)

 평범한 사람들의 입과 혀가 이럴진대, 정치인들이 입과 혀를 잘 못 놀리면 그 화근은 더욱 크다. 홍익표 민주당 전 대변인의 혀가 자기 몸을 베고 당에 화를 입히는 걸 넘어, 정국을 소용돌이치게 하고 국가원수와 국가체면까지 손상을 입혔다. 자신의 입과 혀로 자해(自害)하는 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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