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논설위원, 소설가)

 “여보게, 젊은이!” “예, 샌님.”
 나이 차이나 많은가 일흔여덟이니 고작 두 살 위인데 꼭 ‘젊은이’ 라고 부른다. 이걸 상대편에선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젊은 아이 취급으로 한껏 내려 보는 언사여서 기분이 영 그럴 수 있다. 처음엔 젊은이도 언뜻 이렇게 받아들여졌었다. 하지만 이내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 부르는 소리가 다정다감하게 들렸다. 그 안엔 친동기간처럼 끈끈한 정이 진하게 배어 있고 장난기가 아닌 진정함이 어려 있었다. 그리고 거의 같은 또래이면서도 한창 활력 있는 삼사십 대 젊은이로 대해 주는 것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그래서 젊은이도 한껏 예우를 갖춰 ‘샌님’ 이라고 불렀다. 이 역시 상대편에선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이 자식 이거 젊은이라고 한껏 추어주니까 이쪽을 꽤나 고리타분한 늙뱅이로 보는 것인가?’ 하고 기분이 퍽 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샌님도 젊은이의 진의를 알아차렸다. 그건 선비대접이라는 걸. 그러니까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에 대한 예우의 호칭이라는 걸. 그런데 사실 샌님은 호칭 그대로 행동이나 성격이 얌전하기는 하나 고루하고 융통성이 없기는 하다. 여하튼 둘은 이렇게 상하 ? 선후배의 격을 자연스럽게 유지하면서 돈독한 사이로 지내오고 있다. 그런데 동네사람들은 이들의 이러한 관계의 연유를 이렇게 말한다. ‘초록은 동색여. 가제는 게편이여’라고. 그러니까 이들 둘은 닮은꼴이라 그렇다는 것이다.
 샌님은 39살에 이 마을에 들어왔다. 39년 전이다. 그때 동네에선 말이 많았다. “그 사람 높은 학교까지 나온 훌륭한 사람이라고 그래서 서울서 회사도 좋은 데만 골라 여기저기 다닌다고 장인장모가 사위자랑 일색였는디 그 사람 왜 여편네 따라 이 시골구석 처가로 들어온겨?” 이때 최 서방이, “방중에는 서방이 제일이고, 집중에는 계집이 제일이라잖아. 제일인 여자 집으로 온 게 뭐 잘못 됐어?” 했다. “이 사람 또 말장난이네. 그 사위 머리가 좋다더니 자네도 말 둘러대는 재주 보면 자네 머리도 참 좋으이.” 그러자 또 최 서방이 나섰다. “남자들은 다 대가리가 둘이라 머리가 좋은겨.” “얼래 이 사람 보게, 그럼 여자들은?” “여자들은 다 입이 둘이라 말이 많은 거구.” “참 못 당하겄네. 그런데 자넨 왜 그리 말이 많은가. 자네 혹시 여자 아녀?” “이 사람이, 할 말 있구 안 할 말 있지 내가 여자라니 여자찌리 혼인해 애 낳는 거 봤어. 애가 둘이나 있는 사람 보구 그게 할 소리여?” “알았네, 잘못했네. 진정햐. 우째 말이 엉뚱한 데루 빗나갔어. 여하튼 그 사위 한번 사랑방에 데려다 놓구 인사라도 통해야겠는 걸.” 그래서 하루 날짜를 잡아 그 사위를 사랑방에 불러들였다. 동네사람들은 사위의 기를 이참에 꺾어볼 작정이었다. “사위양반, 장가들러 처갓집에 처음 왔을 적에 달어보곤 오늘 두 번째 정식 상면이오. 이제 우리 마을로 아주 들어와 살기로 했다니 반갑고 환영이오. 근데 왜,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안 한다는 처갓집으로 들어온 거요?”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 “겉보리 서 말이 없던가요?” 그래도 눈만 떴다 감았다, 감았다 떴다. 하고만 있는 거였다. 그걸 보더니 또 최 서방이 나선다. “떴다 감는 눈짓은 정들자는 뜻이고, 감았다가 뜨는 눈짓은 나를 보라는 뜻이니 인제 정들며 같이 살아가자는 것으로 알고 우리 서로 잘 지내보자구요.” “이 사람 이거, 그 말은 선남선녀 간 사랑표시에나 쓰는 말 아닌가. 아무 데나 끌어다 붙여?” “이 사람이야 말루 뭘 모르는 사람이구만 여기에두 해당하는 말여 왜 이래 이거. 꼭 그런 데만 쓰라구 전매특허라도 냈단 말여?” 눈을 부라리자 “알았네, 알았어. 또 말길이 엉뚱한 데루 빠져들었구먼.” 이렇게 말이 많았다. 최 서방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 동네사람들의 은근한 텃세는 사위를 우울하게 했다. 게다가 허약한 몸으론 힘든 농사일이 버거워 동네사람들과 품앗이도 못하니 겉돌아 외롭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럭저럭 40여년이 되고 보니 그런 대로 정이 들고 고향처럼 돼버렸다.
 젊은이는 이 마을에 들어 온지 15년여가 된다. 공직을 퇴직하고 전원생활을 갈망하는 걸 알고 처가에서 집터를 마련해 주어 들어오게 됐다. 그러니까 샌님처럼 처가동네로 들어온 사람이다. 이래서 동네사람들은 이게 둘이 닮은꼴이라는 것이다. 샌님이 젊은이의 처가동네 전입을 제일로 반가워했고 이래서 둘의 정이 남달리 돈독하니 ‘초록은 동색, 가재는 게 편’ 이란 동네사람들의 말은 또한 이래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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