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강제 점령한 우리 땅 대마도 반환운동본부’가 최근 명칭을 바꾸고 활동범위를 전국으로 넓혀 나가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10월 괴산군에서 출범한 이 단체는 지난 13일 지역 주민과 중원대 교수 등 10명이 모인 가운데 명칭을 ‘'대마도 찾기 본부’로 재정비했다.
지난 5월 괴산군에 단체등록을 마친 이 단체는 대마도 반환 활동을 위한 자료 수집과 함께 전문가를 초청해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주권의식 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
본부는 10월 중 구성원을 포함해 새로 영입하는 회원과 함께 대마도를 방문해 대한민국 영토임을 재확인하고 국민에게 이를 알리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본부는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 10일 발대식에서 “일본이 1945년 7월 독일에서 열린 포츠담선언에서 대마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인정했지만 지금까지 반환하지 않고 오히려 독도가 자신의 영토라는 허위 주장을 하고 있다”고 성토한 바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취임 사흘 뒤인 1948년 8월 18일 첫 기자 회견을 열어 대마도를 대한민국에 반환할 것을 일본 정부에 강력히 요구했다.
본부는 지난해 11월 30일 중원대에서 학술 세미나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상훈(관동대 학군단장) 석좌교수는 ‘한·중·일 삼국의 영토 문제와 대마도’를 주제로 ‘대마도 반환 요구와 국제적 의미’의 당위성 등을 강조했다. 
그는 “1968년 일본이 오가사와라를 미국에 돌려준 선례가 있다”며 “일본은 인접한 국가에 대한 국제적 신의회복 차원에서 대마도를 대한민국에 반환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중원대 교수진이 참가해 학술적인 측면에서 대마도 반환과 연계한 국가적인 활동과 전개 과정들, 대한민국 정체성 확보 방안을 집중 논의하고 앞으로 전개할 방향들을 설정했다.
현재 대마도에는 구한말 항일 의병장으로 대마도에 끌려와 순국한 면암 최익현 선생의 장례식을 치렀던 슈젠지(修善寺), 대마도 번주의 양자 소 다케유키(宗武志)와 결혼한 고종 황제의 딸 덕혜옹주 결혼 봉축비가 세워져 있다.
조선통신사 비를 비롯해 1803년(조선 숙종 29) 조선 역관사 108명이 풍랑으로 배가 침몰해 목숨을 잃은 조선역관사 순국비와 한국전망대 등도 있다.
일본이 임진왜란 때 가장 먼저 출정한 대마도 곳곳에는 우리나라와 관련한 역사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셈이다.
특히 이즈하라마치(嚴原町)에는 대마방위대(對馬防衛隊)가 설치한 안내판은 일본어와 한국어로 글이 적혀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안내판에는 ‘일·한 친선을 중요하게’라고 붉은 글씨로 강조하면서 ‘쓰시마 도민은 일·한 친선을 소중히 하는 한국인을 환영합니다. 일본 고유의 영토 쓰시마는 역사와 관광의 섬 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지리적으로 한·일 양국의 중간에 있으면서 역사적으로 양국의 우호로 생존의 길을 모색했던 대마도 주민의 심정을 표현하면서도 대마도가 일본 영토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대마도 반환을 독립운동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들을 토론 광장으로 이끌어야 하고 그 속에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시민단체들의 교류와 협력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부각시켜야 하는 것이 ‘대마도 찾기 본부’의 전국 활동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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