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동양일보 상임이사)

몇 사람과 식당엘 갔다.

음식을 먹는 도중 종업원을 부를 일이 생겼다. 마침 음식시중을 드는 이는 20대 여성이었다. 그런데 뭐라고 불러야할지 난감했다. 그래서 동행자들에게 이럴 때 호칭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아르바이트생은 아닌 것 같으니 학생이라 부를 순 없을 것 같고.”

“젊은 여성에게 아줌마라고 부를 수도 없고.”

“아가씨는 폄하하는 것처럼 들릴 텐데.”

“사장님도 아니고, 사모님도 아니고, ‘이모’나 ‘언니’도 안어울릴 것 같고.”

결국 우리는 “저기요”와 “여기요”를 사용해서 시중을 받았다.

그래서 호칭이 화제가 되었다.

영어권의 나라들처럼 2인칭은 모두 ‘유(you)’라고 부르면 간단하겠지만, 존대어 겸양어 등이  발달한 한국에서는 사람에 따라 나이에 따라 사회적 관계에 따라 부르는 호칭이 다 다르다 보니 예의에 맞게 호칭을 쓴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같은 호칭도 시대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지기도 한다.

‘아가씨’라는 말이 원래는 높임말이었고, ‘김양, 이양’, ‘미스 김, 미스 박’ 도 한때는 오피스걸의 경칭으로 사용했던 호칭이지만, 최근에는 기피하는 호칭이 되었다.

2인칭 호칭뿐이 아니다. 노인들 중엔 노인이라는 말도 싫어해서 ‘노인 복지관’을 ‘어르신 복지관’으로 바꾸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호칭에 대한 고민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식당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끝에, ‘차림사’ 라는 이름의 보급 운동을 펼치고 있다. 어색하고 쑥스럽다는 평은 있으나 마땅한 대안이 없으면 ‘차림사’라는 말도 좋은 것 같다.

호칭사용이 문제가 되니까 아예 부를 필요가 없도록 식탁위에 벨을 붙여놓는 식당도 늘어나고, 종업원들이 명찰을 달고 다니면서 필요하면 이름을 부르도록 배려해주는 식당도 생겨나고 있다.

호칭 중에 제일 좋은 것은 이름을 부르는 일이다.

김춘수 시의 ‘꽃’처럼 누군가 ‘꽃’이라고 불러줄때 비로소 ‘꽃’이 될 수 있듯이 ‘이름’도 누군가 불러줄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이름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부르고자 할 때는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제일 좋다. 이름 뒤에 ‘씨’자만 붙이면 불편할 것이 없다. 여성에게나, 남성에게나 젊은 사람에게나 동료에게나 ‘씨’는 공통의 경칭이 된다. 만일 ‘씨’가 딱딱하게 느껴진다면 ‘님’을 붙여도 괜찮을 것이다.

그런데 이 ‘씨’를 붙일 때 성을 부르지 않고 이름에만 붙일 때는 조심해야 한다. 50대 직장상사가 20대 아랫사람에게 ‘ㅇㅇ씨’를 붙이는 것은 경칭이 되지만, 20대가 50대에게 ‘ㅇㅇ씨’라고 하면 실례가 된다. 그런데 이런 것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내가 전에 다니는 요가학원 원장은 모든 수강생을 ‘ㅇㅇ씨’로 불러서 지적을 해준 적이 있다.

호칭 중 조심해야할 것은 직장에서의 호칭이다.

특히 아랫사람이라고 해서 경칭이 없이 ‘ㅇㅇ야’라고 이름만 부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부르는 사람이야 친숙한 사이라는 것을 표시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같은 감정이 아닐 수 있다.

 


또 여성들이 직장의 선배를 언니라고 부르는 ‘언니문화’도 사라져야할 유산이다. ‘언니’라는 호칭은 사적관계의 호칭이지, 공적관계의 호칭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그것도 엄연히 직급과 직위가 있는데 몇몇이서 친분관계를 과시하듯 ‘언니’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직장분위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을 부르는 호칭, 부르지 않을 수 없을 때, 부르면 기분 좋아지는 호칭, 그런 호칭문제를 고민할 때다. <상임이사>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