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복(흥덕새마을금고 이사장)

 마른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로 달궈진 방안은 종일 선풍기를 틀어도 후텁지근하다. 더위에 지친 몸은 물먹은 솜처럼 늘어지고 불에 덴 것처럼 여기저기가 화끈거린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물을 끼얹어 보지만 시원함도 잠시뿐 돌아서면 다시 뜨겁게 느껴진다. 폭염은 업무의욕도 저하시킨다. 

 일반 주택은 대개 2~3층으로 지어진 슬래브 지붕 구조로 위에서 내리쬐는 열기와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상하로 맞물려 전달되기 때문에 그야말로 찜통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나마 고층 아파트는 훨씬 나은 편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더위에 시달리다보면 불쾌지수가 높아져 괜히 짜증이 나고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낸다. 각종 범죄 발생 빈도가 여름에 높은 까닭은 인간의 감정중추가 더위로 인하여 조절을 잘 못하기 때문이란다.

 며칠씩 고온이 계속되는 여름날은 에어컨, 선풍기, 냉장고 등 전력사용기기가 전기사용량 한계치를 넘나든다. 정부발표에 따르면 올해는 예년과 달리 원전이 다수 고장 나고, 새롭게 건설되는 발전소나 전력 관련시설이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해 전기사정이 넉넉지 못하다고 한다. 우리 국민 고질병인 ‘님비’(NIM BY)도 문제지만 ‘핌비’(PIM BY)도 문제다. 정부는 언론매체를 통하여 연일 ‘블랙아웃’(BLACK OUT)을 경고하고 있다. 이게 전기를 조금 덜 쓴다고 될 일인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지.

 도심은 바람이 쉽게 빠져나가기가 어렵다. 이리저리 골목으로 막히는데다 건물외벽에서 발산되는 열기는 바람을 가두고 가열시킨다. 한낮의 거리는 작렬하는 태양빛에 달궈진 아스팔트 열기로 온통 녹아내리고, 도심을 가득 점령한 자동차들 역시 끊임없이 붉은 기운을 쏟아낸다. 숨쉬기조차 힘들다. 이러한 고온현상은 밤까지 계속되어 도시의 온도가 주변지역보다 5~10도 높아지는 ‘열섬현상’을 부채질한다. 그러니 바람인들 시원할까. 

 도시건물은 시골과 달리 전용공간에 대한 여유 없이 설계될 수밖에 없다. 천정부지로 솟는 땅값 때문이다.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빌딩숲은 보이지 않는 담으로 둘러친 성벽을 연상시킨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 만든 감옥 속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어느 시인은 도시를 인간들로부터 동떨어진 섬이라고 읊었다. 

 어지럽게 분포된 콘크리트 건물들은 그곳에서 생활하는 인간의 감성조차 메마르게 한다. 도시의 속도 높은 생활방식은 극한의 편리성만을 추구한 나머지 편안함을 잃고 인간을 고립시키는 단절의 세계를 촉발시켰다. 앞집 사람은 뒷집 사람을 알지 못한다. 자주 만날 기회도 없으며 서로에 대한 관심과 노력도 없다. 그저 낯선 타인일 뿐이다. 단절은 필연적으로 불신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인간의 도타운 정이 폐쇄된 감정의 울타리를 넘어가지 못하다 보니 주차나 층간소음 등으로 이웃에 대한 감정의 골만 깊어져 간다. 심지어 살인도 일어난다. 오늘도 차가운 도시인은 우울하고 몽롱하게 채색된 빌딩숲으로 자신을 숨기기에 바쁘다. 

 며칠째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다. 사람이나 동물은 추위보다 더위에 약하다. 동물원에 가보면 동물대부분이 더운 열기를 피하느라 축 늘어져있다. 더위에 약한 것이 어디 동물뿐인가. 식물도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시들해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럴 땐 눈 쌓인 겨울이 그립다. 추운 겨울엔 여름이 생각나지만. 지독한 무더위는 생활리듬을 깨뜨려 건강을 위협하고 식욕조차 잃게 만든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계곡이나 바다로 여행을 떠난다. 피서가 주는 즐거움은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활력을 충전시키는데 있다. 누구나 경험이 있겠지만 며칠간 더위를 피해 휴가를 가보면 삶에 대한 의욕도 충만해지고 새로운 기대로 몸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돌아올 때쯤이면 더위도 한풀꺾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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