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배 (충청북도의회 의원)

  충청권과 아무런 협의 없이 정부와 대전시가 과학비즈니스벨트 수정안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충북을 비롯한 충청권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와 지방의회, 정치권 등은 즉각적인 수정안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 만이 수정안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수정안으로 인해 청원, 세종, 천안 등 기능지구 3곳이 유명무실화 될 것이라는 우려마저 비난하고 있다. 더 나아가 야당인 민주당이 정파적 이해 때문에 반대한다고 정략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과연 그런가? 새누리당의 주장이 맞는다면 충북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다행이지만, 그렇지가 않다.
  먼저 과학벨트 수정안에 대한 사실관계다. 충청권 4개 시?도가 공조와 협력으로 과학벨트를 사수했으나 정부와 대전시는 충청권과 사전협의 없이 거점지구를 변경했다. 16만평 규모의 기초과학연구원을 기존 둔곡지구에서 엑스포과학공원으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둔곡지구의 기초과학연구원 부지는 국가산업단지가 된다. 이에 따라 거점지역 내 산업시설 용지는 21만평에서 36만4천여 평으로 크게 늘어난다.
  청원, 세종, 천안 3곳의 기능지구는 거점지구와 연계하여 응용연구, 개발연구 및 사업화를 수행하기 위한 곳이다. 즉, 거점지구의 연구 성과물을 산업화 하는 지역이다. 그런데 거점지구 내 산업단지가 늘어났으니 기능지구 활성화는 거점지역이 다 채워진 뒤에나 가능하지 않겠는가. 오창과학산업단지에 입주한 벤처업체들의 평균 부지가 1200평임을 감안하면, 거점지역에 새로 생긴 부지에만 해도 벤처기업 120개가 넘게 들어간다. 기능지구가 빈껍데기로 남을 공산이 큰 이유다.
  정부와 대전시가 거점지구를 변경한 이유는 정부가 부지매입비를 자치단체에 떠넘기려 했기 때문이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과학기술 연구는 당연히 국가 부담으로 추진돼야 한다. 새누리당도 대통령선거 정책공약으로 과학벨트 거점지구의 부지매입을 국고로 지원하고 조기에 시행하겠다고 제시했다. 박근혜 대통령후보도 대전유세에서 과학벨트 거점지구 사업이 차질 없이 건설되도록 국가가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다음은 예산집행이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6년간 추진하는 과학벨트의 총 예산은 5조1800억원으로 대전 거점지구에 1조9760억원(38.1%), 기능지구에 3040억원(5.9%), 나머지 55%는 대구, 울산, 포항, 광주에 배분된다.
  청원 등 기능지구 3곳에는 올해까지 44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으나 실제로는 23%인 103억원만 편성됐다. 기능지구가 과학벨트 전체 예산의 5.9%에 불과한데 그나마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 수정안 반대여론이 높아지자 미래부는 부랴부랴 연말까지 계획했던 기능지구 연구용역을 8월말까지 앞당겨 내놓겠다고 한다. 과학벨트 계획이 확정된 후 지난 2년 동안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진행 상황을 보면 과학벨트의 미래가 험난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와 한나라당은 행복도시, 대덕연구단지, 오송?오창을 묶는 과학비즈니스벨트를 공약했고, 2009년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되자 2011년 과학벨트 대선공약 폐기를 선언했다. 이에 충청권은 대선공약 이행을 요구하며 분기했다. 그 결과 과학벨트는 지켜냈지만, 이명박 정권은 결국 나눠먹기 식으로 영호남에 분산 배치하는 정치벨트를 만들었다.  
  그 후 2년여 동안 과학벨트 추진은 극히 부진했다. 여기에 기재부는 올해 타당성 재조사를 통해 총 예산 5조1800억원을 3조3000억원으로 축소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특히 기능지구 추진 사업에 대해서는 극히 부정적이다.
  박근혜 정권 입장에서 보면 과학벨트는 애물단지일 것이다. 전 정권에서 시작한 것이고, 자신의 각종 공약사업에도 부족한 재원을 과학벨트에 많이 써야 하기 때문이다. 수정하고 축소해서 누더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충북과 충청권이 해야 할 일도 자명해진다. 세종시 수정안을 막아냈듯이, 과학벨트 수정안도 막아내야 한다. 호랑이 그리려던 과학벨트가 누더기 고양이가 되지 않도록 지켜 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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