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종 호(논설위원 · 청주대명예교수)

요즈음 정치권에서는 내년(2014) 6월4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무성하게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4·24 재·보궐 선거에서 실험적으로 무공천을 단행하였고, 민주당은 7월 20~24일에 걸쳐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안’을 놓고 당원투표를 실시, 67.7%의 찬성표가 나오자 지난 25일 정당공천을 하지 않기로 당론으로 확정했다. 

그동안 지방선거의 정당공천제 폐지여부에 대하여는 찬반이 엇갈리어 왔다. 공천제 폐지에 찬성하는 측은 지방선거가 정당공천제 하에 실시됨으로써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지방자치의 기본정신이 훼손됨은 물론 지역 국회의원에게 공천권을 줌으로써 유권자들의 후보선택권이 배척되며, 돈으로 공천권을 사는 ‘돈 공천’의 부정을 차단하기가 어렵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반면에 정당공천제 폐지에 반대하는 측은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면 후보자들의 이념적 성향이나 능력 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채 ‘깜깜이 선거’가 치러짐으로써 정치발전을 도모할 수 없게 되고, 정치 신인의 등장이 막히게 되며, 지역유지나 토호세력 등이 이권 및 영향력 확대 기반 조성을 위해 자금력과 인맥을 동원하여 자기편에 속하는 후보를 당선시키려는 풍토가 조성될 수 있고 당선된 사람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구현보다는 이들의 눈치 보기에 급급함으로써 지방자치를 후퇴시키게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리고 여성 및 장애인 단체에서는 공천제를 폐지하게 되면 이들에 대한 ‘강제적 배려’의 기반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는 주장을 펴 왔다. 그런가하면 정당공천제 폐지를 전제로 공천제도 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여당 산하의 정치쇄신특별위원회는 일몰제(sun-set law: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에 중지 또는 폐지되도록 규정한 법 및 제도)를 적용하여 정당공천제를 한시적으로 폐지한 뒤 3차례에 걸쳐 선거를 치러보고 폐지여부를 결정하자는 안을 내 놓는가하면 민주당 소속 찬반검토위원회에서는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하여 ⅰ)지역구 선출 여성의원과는 별도로 지방의회 정원의 20%를 여성 몫으로 배당하는 ‘여성 명부제’ ⅱ)후보자가 당적을 포함하여 지지정당을 표방할 수 있는 ‘정당표방제’ 등의 도입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는 어제와 오늘의 얘기가 아니고 지방선거 때마다 정치과제로 거론 되어왔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유지욕에 밀려 공식적으로 정치제도 개선의 의제(agenda)로 상정되지 못하고 방기되어 왔다. 지방자치행정은 국가 보위와 국민전체의 복지 향상 및 지역간 균형발전 등을 도모하는 중앙행정과 달리 일정한 지역을 영역으로 하여 공간의 효율성 제고를 비롯, 지역복지의 극대화를 위해 진력하고, 지역자결주의의 원리 하에 지역주민들의 생활 및 민원해결에 대한 서비스 증진 등을 본무로 한다. 집행기관인 자치단체장과 의결기관인 지방의회 간에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면서 생산적이고 조화로운 협치(協治:governance)를 실현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지역행정은 지역 자체가 국가의 일부분이라는 점에서 중앙정부로부터 많고 적은 재정지원을 받지 않을 수는 없지만 자주적 재정에 의하여 자율성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점에서 지역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한 중앙정당에 예속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현재처럼 기초선거에 있어서 정당공천을 법제화하는 경우 지방자치단체는 지역행정을 폄에 있어서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집권당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고, 단체의 장과 지방의회 간에 소속정당을 달리 함으로써 지역대표자들은 지역행정의 본질인 주민들의 행복지수 향상과는 관계없는 일로 갈등과 대립이 계속되며 이로 인하여 지역행정은 혼란과 낭비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지역의 현안 문제에 대하여 집행기관이나 의결기관 등은 민의의 반영을 위하여 소신과 사명의식에서 발원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공천권을 가지고 있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의중에 추종하는 식물자치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이는 지방자치의 시계를 거꾸로 가게 하는 지방자치의 역주행 현상인 것이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는 제18대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었고, 70%에 해당하는 국민절대 다수가 찬성하는 사안이다. 그렇기에 폐지되어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지방자치는 귀하들의 세력권 확대가 아닌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대승적이고 대아적인 자세로 선택권을 지역주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흔쾌히 그리고 과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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