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부국장

논리적 모순은 흔히 이기주의적 관점이나, 자기합리화 과정에서 표출되곤 한다.
학생운동이 치열하던 대학 시절, 사회학 전공 시험 문제로 ‘마르크스주의 비판론을 비판하라’는 주제가 출제된 적이 있었다.
외형적으론 사회학의 근간으로 인식되는 마르크스와 베버의 사상을 동시에 접근함으로써 사회학의 논리적 체계를 정립하라는 교육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마르크스주의를 선호하는 진보 성향의 교수가 마르크스주의 비판론의 논리적 모순을 집어내 이를 비판함으로써 긍극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를 예찬하라는 의도나 다름없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개인적 정서를 교육이라는 객관적 과정을 통해 주입하겠다는 자기 합리화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핫이슈로 등장한 정당공천제 폐지를 둘러싼 주장들도 논리적 모순 투성이다.
지방자치는 중앙집권적 정치·행정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적 본질이다.
그럼에도, 정당공천제 폐지 반대론자들은 정당민주주의 부정, 정책개발과 민의의 형성·결집을 통한 책임정치의 실현 저해, 정치적 취약세력인 소수·신진·여성세력의 정치적 기반 약화, 지방 토호세력의 지방행정·정치 장악 초래 등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의 긍극적 목적은 중앙정치와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갖는 일이라는 점에서, 정당정치의 영역을 벗어나 주민자치로 이뤄지는 정치·행정적 기반을 정착하는 데 있다.
정책개발과 민의 형성·결집을 통한 책임정치를 정당정치만이 구현할 수 있다는 주장도 논리적 모순이다.
지금 한국의 정치는 이기주의적 당리당략에 치우친 정치적 공방에 함몰돼 정책개발을 외면하고, 민의 형성·결집을 왜곡하는 반민주적 행태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정치적 취약세력의 정치적 기반 약화를 우려하는 것도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여성이다. 선거를 통해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시대 속에서, 여성이 홀대받는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합리적 논리라고 할 수 있는가.
또 선거는 다수의 선택을 받는 사람이 이기는 정치적 게임이다. 경쟁 관계 속에서 각자 다수의 선택을 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느냐가 승패를 좌우하기 마련이다.
소수세력이어서, 신진세력이어서, 여성세력이어서 공정한 경쟁 구도 속에서 일정한 어드밴티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불공정한 경쟁 구도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이기주의다.
유권자들의 민도나, 현실적 정치 구도 하에선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면 이 또한 논리적 모순이다.
유권자들이 정치적 취약세력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하고 외면하는 수준의 정치적 민도를 지니고 있다면 지방자치를 해선 안된다.
주민 중심의 지방자치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주민들의 정치적 수준이 낮아서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할 수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지방토호세력의 지방행정·정치 장악을 우려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현재 지방단체장이나 지방의원 모두 지방토호세력이 장악하고 있어야 옳다. 이 또한 유권자들의 정치적 수준을, 주민들의 정치의식을 무시하는 논리다.
정치적 배려와 불공정한 룰에 의해 게임을 치르겠다는 심산이라면, 이미 지방행정·지방정치를 감당할만한 자질이나 능력이 없음을 자인한 꼴이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은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국민들이 가지는 정부의 수준은 그 국민들의 수준과 동일하다’고 강조했다.
유권자들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도출하든 그것은 유권자들의 선택이며, 책임 또한 유권자들에게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유권자들에게 의도된 선택이나, 제한된 선택이나, 불공정한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행위다.
정치적 취약세력이어서 정치적 배려와 어느 정도 불공정한 게임룰은 용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기주의적 논리는 ‘선거는 다수표를 획득하는 사람이 이기게 돼 있으나, 그 다수는 동질적인 것이 아니다. 다수는 서로 다른 소수들로 구성돼 있으며, 민주주의의 기적은 다른 동기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 정치학자 마리오 그론도나의 논리로 배척이 가능하다.
귀결하면, 정당공천제 폐지를 반대하는 것은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정당공천제 유지에 따른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거나,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을만한 자질·능력이 부족하거나, 불공정한 제도적 지원을 통해 개인적 야욕을 채우겠다는 ‘고백(告白)’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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