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길(논설위원, 소설가)

 1950년 6월 25일. 선전포고도 없이 내려진 김일성의 남침명령으로 시작 된 핏빛전쟁은 3년 1개월이나 계속됐다. 피아의 군인과 민간인 수백만 명이 희생되고 가옥과 산업시설이 파괴 됐으며, 강토는 포화로 뒤집혀 처참한 폐허가 됐다. 세계 전사에 유례없는 참상이었다. 

 1953년 7월 26일 휴전협정 후 60년, 포화는 멈췄으나 전쟁이 끝낸 것은 아니었다. 단지 전투행위만 중지했을 뿐, 간단없이 이어지는 북의 도발로, 언제 다시 포성이 울릴지 모르는 위험지역이요,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다. 

 뒤집혀 흙먼지 나던 휴전선 이남의 산하는 다시 푸르러졌다. 폐허위엔 삶의 터전이 복구되고 경제개발에 성공, 풍요를 누리게 됐다. 혈육을 잃고 울부짖던,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은 가슴속 응어리로 맺혀 한이 되었지만, 절망은 말끔히 씻어냈다.

 그러나 휴전선, 비무장지대 지뢰밭 건너편엔 고지마다 남녘을 향한 총구가 있고, 그 뒤엔 굶주린 2천만 동포가 갇혀있다. 그들은 세습왕조의 권력유지를 위한 노예가 되고, 일용할 양식은 핵개발비로 강탈당했다. 생존권마저 박탈당한 채 굶주림과 절망을 끌어안고 산다.

 휴전을 ‘승전’으로 왜곡하고 있는 북한은 휴전조인 일을 전승절로 명명, 해마다 대대적인 축하행사를 벌여왔다. 젊은 독재자를 옹위한 올해 역시 전승절 행사는 빼먹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외래하객을 초청하고, 외신기자를 불러들이는 요란을 떨었다. 감춰뒀던 신형무기까지 동원, 서울과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 전력을 과시하는 거창한 열병식도 벌였다.

 하지만, 요란 떤 것만큼 선전효과는 신통치 못 됐던 모양이다. 세습왕조의 가훈인 주체사상을 선전하고 핵무장의 당위성(?) 주장과 함께, 젊은 독재자의 위상을 드높이려던 일은 희망사항이었을 뿐이다. ‘피로 맺은 맹방’임을 확인(?)해 준 중국도 ‘핵무장 절대 불용’의 질책을 바꾸지 않았다. 젊은 독재자는 많이 실망했을 거고, 그를 옹위하는 군부나 당의 간부들은 충성심 부족이라는 ‘령도자’의 분노에 몸조심을 해야 할 판이다.   

 고립무원의 처지를 만회하기 위해, 전승절 행사에 요란을 떨고, 화해를 과시하기위해 남북대화를 서둘러 제안했지만, 후안무치의 생떼가 드러나자, 다음회담날짜를 잡자는 우리 측 대표의 제의도 거부하고 판을 엎어버렸다. 그리고 남측의 기자실에 난입, 비난을 퍼부었다.

 전승절 축하잔치는 끝났다. 화해과시용 촌극도 엎어버렸다. 앞으로 무슨 비난과 협박, 도발을 재개할지 모른다. 설사 우리의 7차 개성공단 회담재개를 위한 마지막제의(7.29)를 수용한대도, 공단폐쇄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에 무슨 꼼수를 부릴지 모른다. 외화벌이란 단물엔 미련이 있으나, 툭하면 옭아맬 족쇄로 사용할 저의를 버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는 자신들의 저의와 꼼수는 요지부동인 채 우리의 변화와 분열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저마다 ‘나 살 궁리’ 뿐이고 ‘내 주장’ 뿐이다. 희망버스는 열심히 절망을 실어나르며 기업을 국외로 내쫓고, 일부시민은 목숨 걸고 넘어 온 탈북동포에게 텃세를 한다. 입심 거친 모 정치인은 대통령의 가계를 모독, 언론자유를 배 터지게 누리고, 또 다른 이는 인터넷 글발을 빌미로 국정원을 옥죄고 대통령선거 무효를 주장한다. 의원들은 남북정상회담기록에 매달려 ‘지겨운 기 싸움’에 열을 내면서도 입으로는 ‘그만 싸우자’고 공자님말씀만 하신다. 유식한 일부 명사는 ‘6.25 때 미군 참전이 없었다면 통일이 됐을 것’이라거나 ‘맥아더는 살인광’이라 매도하고, 6.25의 영웅 백선엽 장군을 친일파라고 매도했다.

  미국의 2009년부터 해마다 대통령이 정전 기념일 포고문을 발표하고, 연방정부의 모든 기관이 조기를 게양, 한국전전사자와 참전용사의 공적을 기린다. 한국전참전용사 단체는 금년 행사에 백선엽 장군을 초청, 치열했던 전투상황을 듣고 그의 애국충정과 용기를 찬양했다.

 캐나다를 비롯한 다른 참전국들도 각기 기념행사를 갖고 6.25를 상기,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들 대부분은 휴전일 날짜조차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관련기관, 단체의 주관 행사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준 전시상태라는 것 자체를 잊은 것이다.

 도대체 6.25는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나? 휴전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북한처럼 축제를 벌일 일은 아니지만, 잊고 지날 일이 아닌 것이다. 6.25는 남의 전쟁이 아니었다. 잊혀진 전쟁이 돼서도 안 된다. 전쟁 발발경위와 휴전의 의미, 그리고 참전, 산화한 이들의 거룩한 뜻을 바로 새기고, 후세들이 잊지 않도록 정확하게 가르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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