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일(극동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

  참으로 허망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를 연출한 한국 드라마계의 거장 김종학PD가 지난 23일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고인이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지난해 연출했던 <신의>(SBS)로 인해 빚어진 어려움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100억 원의 제작비를 들였지만 평균 시청률이 10%에 머물면서 드라마를 바탕으로 진행하려던 사업 구상이 차질을 빚으면서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출연료를 지급받지 못한 일부 출연자와 스태프들이 제작사를 고소했고, 고인도 배임 및 횡령, 사기 혐의로 피소되어 경찰과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고인의 죽음을 계기로 열악한 한국 드라마 제작 현실이 도마에 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잘못된 외주제작 제도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방송연기자노조는 고인을 잘못된 외주제작 시스템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라고 하면서 “방송사에만 유리한 외주제작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런 비극은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도 고인의 명복을 비는 성명을 발표하며 외주 드라마 제작시장의 환경 개선과 불합리한 갑을 관계 해소 등을 촉구했다.

  외주제작이란 방송사가 독립제작사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것을 말한다. 1991년 이후 KBS, MBC, SBS 등 지상파방송사는 의무적으로 방송시간의 일정 비율 이상을 외주제작 프로그램으로 편성해야 한다. 이는 지상파 중심의 제작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제작 시스템을 활성화함으로써 방송산업 전반에 걸쳐 창의적이고 활력 있는 경쟁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는 정책적 목표에 따른 것이다. 당시에는 지상파 3사의 독과점 구조로 인해 방송시장의 균형적 발전이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필요한 정책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제도를 도입하기만 했을 뿐 지난 20여 년간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방치하고 있었기에 애초 추구했던 정책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채 오히려 방송시장을 교란시킨 주범으로 낙인찍히고 만 것이다.

  그동안 드라마 제작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늘어난 제작비는 드라마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부 톱스타와 작가를 섭외하는데 사용되었다. 회당 1억 원 이상을 받는 출연자들이 흔할 정도로 출연료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국내 드라마의 출연료 비중은 55~65%로 일본의 20~30%, 미국의 10%에 비하면 지나칠 정도로 높다. 작가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아 유명 작가들에게는 회당 3천만 원에서 5천만 원의 작가료가 지급된다고 한다. 이들 출연자와 작가에게 제작비의 3분의 2가 쓰이다보니 기타 조연급 출연자나 제작진들의 처우는 정체되거나 점점 더 나빠지는 것이다.

  외주제작사들이 이렇게 톱스타와 유명 작가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은 한정된 방송시간을 따내기 위한 편성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2012년을 기준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 신고된 독립제작사 896개 가운데 드라마 제작사가 156개에 달한다. 그러나 작년 한 해 동안 지상파에서 드라마를 방송한 외주제작사는 34개에 불과하다. 4: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어떻게든 편성을 따내야 하기에 고액을 들여서라도 스타 연기자와 작가 섭외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기형적인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편성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할지라도 제작비 충당이라는 또 다른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지상파방송사가 지급하는 제작비는 전체 비용의 절반도 되지 않기 때문에 나머지는 협찬광고나 간접광고(PPL)를 통해 스스로 충당해야 한다. 지상파방송사는 제작비를 산정하면서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미래 가치인 협찬수익과 해외 판매에 대한 수익 배분까지 미리 계산한 후 이를 제외한 비용만 지급한다. 그러니 아무리 드라마를 잘 만들어도 정상적인 수익구조를 발생시키기 힘든 지경이다. 드라마계의 미다스의 손이라 불렸던 거장조차도 이런 열악한 외주제작 환경을 이겨낼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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