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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살아지는 이야기
사라지는, 살아지는 이야기
  • 동양일보
  • 승인 2013.08.07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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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희(침례신학대학 교수)

 우리 소설에 이질적 킬러 등장, 이라고 하면 어떤 넘나듦이 될까. 청부살인을 업으로 살아온 주인공이 하도 많은 흉악한 이야기 속에 이미 있어왔으니 어지간한 인물은 역으로 평범하달 수도 있을 터에. 그렇대도 60대 킬러 여주인공이라면 느닷없지 않을까. 청부 살인업에 종사하기에 다소 무리일 여성에 노인에 평범한 외모까지. 시각적 충격이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하는 영상매체에서야 또 모르지만 우리 소설사에서 보기 어려웠던 주인공이니까.

 우리 소설의 외연확장은 공간 뿐 아니라 인물의 영역에도 있어왔다. 십여 년 전부터 노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들이 늘어난 것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인생 다 산 것으로 치부되던 노년의 삶을 소설이 다루기 시작했다. 노인을 중심으로 세계를 배치하고 이야기 양식에 담아보자 노년의 삶이 색다르거나 특이하다기 보다 삶의 연장선에 있는 것임이 분명해졌다. 긴 시간을 살아온 인생들을 긴 시간의 맥락에서 보는 것은 사람이 보낸 시간을 대하는 기본 예의이기도 할 지. 특히 올 여름 들어 나온 두 장편,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이나 구병모의 [파과]는 찰나적 삶의 단면으로는 포착할 수 없이 노인, 노년, 노령에 대한 이야기가 많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흥미진진할 수 있는가를 그려낸다. 긴 여정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지. 시간은 희망이기도 절망이기도 하지 않던가, 해 아래 있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햇빛이 자라게도 하고 쇠하게도 하는  그 일처럼. 공유되는 운명, 시간아래 있는 것들 모두에게. 그것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구병모의 소설 [파과]는 40여 년간 청부 살인업에 종사한 노부인이 이야기 중심인물이다. 업자들 용어로 ‘방역’이라고 부르는 청부 살인을 하는 ‘조각(爪角)’이라는 인물로 누군가 사람을 제거해 달라고 의뢰해오면 이유도 묻지 않고 단숨에 처리하는 냉혹함과 실수 없는 일처리로 업계의 대모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혹독한 세월 동안 감정 싣지 않고 사는 일에 익숙했던 조각에게 나이들면서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그녀가 점차 노쇠한 흔적이 몸과 마음에 생겨나기 시작하는 지점부터 포착해 나가는데, 몇 십 년 해오던 일에 사소한 실수가 생겨난다. 몸이 삐걱대고 마음도 달라지면서 기억력이 흐려지고, 집중력이 흩어지며, 타인들의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수 없이 많은 이들의 삶을 어지럽혔을 자신의 행위에 반성이나 변화가 일어날 조짐일 것이다. 늙어 버려진 개를 데려다 함께 살고,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의 리어카를 정리해주고, 일을 부탁하러 온 다소 무례한 의뢰인에게서 슬픔과 공허를 보게 된다. 자신이 그들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에게로 와 박히는 그 일들이 일어난다. 

 하여, 그저 일, 허무하고 지킬 것도 없는 자신의 삶으로 타인을 대하는 습관에 타인의 어려움과 눈물과 슬픔이 보이기 시작한다. 남들을 보는 삶은 그대로 자신에게로 향해 자기 슬픔과 눈물과 공허한 운명을 대면하기라도 시작했을지.
 이 쯤 되면 어째서 이 사람은 그런 일을 하면서 살게 되었을까 궁금해 질 법도 한데, 지독한 가난과 그 가난에 어울리지 않는 것을 잠시 접한 잘못, 사람들의 가난한 집 아이에 대한 오해들로 그녀는 오갈 데 없이 내몰리게 되었다. 그 때 그를 거둔 것이 하필 이 업종에 종사하는 인물, 무력한 여자아이에게 다가온 구제는 위로이면서 재앙이었을지. 손톱이라는 별명이었다가 조각이라는 별칭을 갖게 된 이 인물은 본명이 소개되지 않는다. 자기 이름을 드러내지 못하는 삶, 있어도 소용없는 이름의 정황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장치일 것이다. 어른들, 부모이거나 그를 맡았던 친척이거나 어려울 때 도움을 준 인물이 조각이가 제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더라면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삶이니. 이야기 종장에 등장하는 그녀가 손톱 케어 받는 이야기는 평생 사람을 제거하는데 쓰였던 자기 손의 한 부분을 아름다운 것으로 덮으려는 행위, 희망을 보게도 하려니와 ‘소멸의 한 지점을 향해 부지런히 허물어지고 있는’ 것에 대한 안쓰러움이라고도 해야 할 것이다. 노년의 삶은 결국 사라지는 것들과 살아내야 하는 것이기도 하려니.

 하여 이런 이야기는 강력한 충격파가 곳곳에 숨어있을 수밖에 없지만, 아련한 정서적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 땅에 목숨을 받은 존재들이 시간을 이기는 방법은 없으므로 시간을 새롭게 사는 것이 가능한 현명함일지 모른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나이 들어가면서 무슨 사람이 되어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떻게 되어야 하는 이야기로 먼 데를 보고 있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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