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논설위원 · 청주대명예교수)

지난 2월 25일에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국정운영철학이라고 볼 수 있는 ‘정부 3.0’ 시대의 개막을 공표하였다. 이는 정부가 국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서의 지향점이나 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을 제시한 것으로서 주권재민(主權在民)을 기조로 한 민본입국(民本立國)의 천명이라 볼 수 있다. ‘정부 1.0’은 정부가 국민에게 일방향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주도형 행정을 말하고, ‘정부 2.0’은 정부와 국민 간에 쌍방향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방식으로서 민관공동형 행정을 말하는데 비하여 ‘정부 3.0’은 정부가 국민이 원하는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방식으로서 국민중심주의 및 수요자중심의 행정을 말한다. 한마디로 ‘정부 3.0’은 국정운영이 국민중심 서비스정부로서의 패러다임(paradigm:관점 및 세계관)으로의 발전을 의미한다.

새 정부의 이러한 국정운영철학은 늦었지만 정부의 존재가치와 행정의 본질 구현의 면에서 다행스러운 발상전환이고 자세정립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행정은 대동소이하게 관위주의 권위주의 행정으로 일관되어 왔다. 겉으로는 국민이 주인이고 정부의 관료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일을 차질 없이 수행하여야 하는 관리인의 관계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국민에 대한 행정서비스를 정부가 국민에게 베푸는 시혜물로 둔갑시키는 풍토조성에 익숙해 왔고, 정보 독점을 무기로 국민의 주인된 권리를 도외시하면서 국민에게 군림하는 행태(行態)를 취해왔다. 모든 정부기관이나 그들의 임무는 당연히 국민의 것이고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범권(範權) 내에서 국민의 것을 제대로 관리하여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인데도 마치 정부와 국민을 대칭적 또는 상하관계로 보고 정부가 노력하여 획득한 유·무형적 생산물을 국민에게 헌납한다는 행정서비스관이 지속되어 온 것이다. 민주주의의 원리로 인정받고 있는 미국의 링컨 전 대통령이 제시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and for the people) 중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개념이 지배해 온 것이다. 필자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논함에 있어서 링컨의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용어는 생략되어야 한다는 판단을 가지고 있다. 본래 정부와 국민은 소유자와 관리인의 관계이므로 거기서 나오는 과실은 응당 국민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국민의 본유물(本有物)인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을 위한다.’는 말이 들어갈 여지가 없는 것이다. 정부가 노력하여 획득한 유·무형의 생산물은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위탁받은 일을 국민과의 계약대로 성실히 이행한 결과물이고 정부 공무원이 받는 보수와 명예는 관리인으로서의 노력의 대가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국민을 위한다.’는 말로 인하여 정부가 관리자의 신분을 망각하고 소유자인양 행세해도 되는 착각을 하게 한 것이다. ‘정부 1.0’은 바로 이러한 사고와 사상에서 나온 수비적 행정서비스 형태이고, ‘정부 2.0’은 수비와 선제의 혼합형으로 ‘정부 1.0’보다 한 단계 발전된 서비스 형태이지만 정부와 국민이 대칭적 및 상대적 관계의 틀로 이해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정부 3.0’은 ‘정부 1.0~2.0’의 약점을 극복하고 국민과 정부와의 관계를 원형에 맞게 소유자(주인)와 관리자의 관계로 복원시키고 행정서비스에 있어서 민본을 철학으로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국가형성(state building:중앙정부 설치)시부터 시행되어야 할 선제적 행정으로서의 국민중심형 행정서비스가 건국 60주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시행된다는 것은 아직도 공공행정이 행정편의주의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이 점이야말로 ‘정부 3.0’이 함유 하고 있는 검은 그림자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부는 ‘정부 3.0’의 행정서비스정책을 전개함에 있어서 이러한 검은 그림자를 거두어 내는 일에 박차를 가하여야 한다.

정부는 명실공이 민본행정의 철저한 실천자로서의 위상을 정립하여야 한다. 국민의 안전과 재산의 파수꾼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하여야 한다. 말 만으로서의 민본이나 국민중심 서비스정부가 아니라 행동으로서의 3.0의 정부를 구축하여야 한다. 국민이 주인으로 대우받는 민본서비스, 수비 내지 방어형이 아닌 선제 내지 선도형 행정시대를 열어야 한다. 정부의 소유자는 국민이라는 인식 속에 국민이 하늘이 되는 행정시대를 활짝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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