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논설위원, 소설가

 논실할머니가 또 주섬주섬 음식을 싸고 있었다. 그 버릇 개 못 준다고, 그러는 게 태생이라고 동네할머니들이 못 마땅해 한다. 논실할머니도 그러는 걸 눈치로 알고 있을 터이지만 개의치 않는다. 말복에 더위를 물리치라고 동네에서 복달임으로 마련해준 삼계탕을 다른 이들이 많다며 덜어 놓은 것들만 먹고 자신 것은 통째로 비닐봉지에 담고 있는 것이다. 이걸 보고 부녀회장이, “할머니, 이것들도 같이 넣으셔야지요.” 하고 상 위에 남아 있는 찰밥이며 양념들을 휩쓸어 넣어 준다. 그래도 논실할머닌 아무런 표정이 없다. 이걸 보자 한 할머니가 등을 돌리며 중얼거린다. “건성으로라도 ‘고마워, 고마워’ 하면 어디가 덧나나 저 쇠말뚝, 쇠말뚝, 이제 저 짓 안 해도 되련만 쯧쯧!” 그러니까 인제 살만해졌는데 왜 여전히 걸신쟁이 노릇을 하느냐 이거다.
 그랬다. 논실댁이 전엔 살기가 어렵고 말고였다. 그녀는 31살에 혼자됐다. 시방은 여자나이 31살이면 이제 결혼적령기에 들었다며 슬슬 시집갈 채비를 하는 처녀들이 수북하다지만 이 나이에 논실댁은 벌써 애를 3남매나 낳고 명 짧은 신랑 때문에 과수까지 됐으니 참으로 딱한 인생이 된 것이다. 게다가 사람이 용렬해서 남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는 데다 재산이라곤 신랑 살아 있을 적 합작해 장만한 아직 10살도 못 넘은 어린 것들 셋뿐이니 당장 살아갈 일이 막막했다. 하지만 천우신조랄까 울타리를 사이에 둔 윗집에 구세주가 있었다. 논실댁보다 5살 위인 용신댁이다. “여보게 논실네, 나보고 성님이라고 하게. 나도 자네를 동상이라고 할게.” 그래서 ‘성님’, ‘동상(생)’이 됐다. 성님은 과부동상의 사정을 잘 알아서 여러 가지로 도와줬다. 어리바리한 동상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남의 집 농사일에 데리고 가기도 하고, 읍내식당일이며 부잣집 허드렛일을 알선해 주기도 했다. 특히 동네 큰일 때에는 으레 과방차지를 하는 성님이 남의 눈 몰래 과방음식을 고루고루 싸서 울 너머  동상에게 넘기면 동상은 집에 가지고 가서 어린 것들과 끼니를 때웠다. 이게 한두 번이 아니고 끼니때마다이고, 큰일이 끝나는 날까지이고, 동네큰일이 생길 때마다니 동네 눈이 여럿이고 보면 어느 눈에 걸려도 걸리게 마련이라 급기야는 이 눈 저 눈 다 알게 되어 동네사람들의 눈 밖에 나게 됐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이 비아냥거렸다. “주는 성님이나 받는 동상이나 저울에 달아도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구먼. 그게 무슨 행우들이람.”, “용신댁도 그려, 논실댁 사정 동네서 다 아는 것인데 그냥 드러내놓고 도와주면 누가 뭐랴?”, “논실댁은 어떻구, 으레 용신댁한테 얹혀 살려구 작정을 했나벼. 언제까지 저럴껴 그래.” 이뿐이 아니다. 동네아녀자들이 친목계를 하자고 모였을 때다. 그런데 의견들이 분분했다. 용신댁과 논실댁의 참여승인가부가 대두된 것이다. “그 사람들 둘이서만 짝패라 이런 데 낄려고도 하지 않을껴.”, “용신댁은 모르지만 논실댁은 무슨 돈 있어 곗돈을 불껴. 그 사람은 아예 제쳐놔.”, “같은 계원이 돼두 그려, 함께 휩싸이질 못하니 서로가 불편햐.” 이렇게 말들이 많아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그들에겐 뜨거운 감자요, 미운 오리 새끼 들이라 넣자니 그렇고 빼자니 또 그러해서 그냥 유야무야되고 만 것이다.
 동네사람들 눈치야 어떠하든 동상 논실댁에겐 성님 용신댁은 천하의 은인이요 구세주가 아닐 수 없다. 덕분에 세 애들 중학교까지 그슬릴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일찌감치 대처로 나가 제 앞가림들을 할 수 있게 돼서 이제는 제 어미를 이렇게 편안하게 해주고 있지 않는가! 이즈음 해서 용신댁은 영감님과 사별하고 외아들 따라 읍내로 이사했다.
 오늘 말복복달임에 주섬주섬 음식을 싸고 있는 것을 보고, 동네사람들은 이제 살만해졌는데 왜 저리 옛날마냥 청승을 떠는지 모르겠다고 눈치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틀 후 동네에, 읍내에 나가 사는 용신댁의 부고가 날아들었다. 오랫동안 중풍으로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더니 급기야 세상을 하직한 모양이다. 동네 아직 살아 있는 또래 할머니들이 장례식장으로 조문을 갔다. 거기 한편 구석에 논실할머니가 머리를 파뭍고 쪼그리고 앉아 울먹이고 있었다. 여기서 동네할머니들은 상주로부터 가슴 뭉클한 사연을 듣는다. 논실할머니가 그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어머니 병구완을 하더니 어제는, “성님, 삼계탕 잡숫고 싶다고 했지유. 오늘 마침 시골동네할머니들이 성님 갖다 드리라고 복달임 삼계탕을 싸줬어유. 잡숴 보셔유.” 해서 몇 첨 받아 잡쉈는데 그게 이승에서의 마지막 저승요기가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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