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권’·‘신병’·‘향응’ 등 일본식 표현
무분별한 사용…“중의적 해석 등 우려”
이달 초 일본은 “일본 국민 10명 중 9명이 독도를 ‘다케시마’로 알고 있으며, 61%는 독도가 국제법상 일본의 고유영토라 답했다”고 발표하는 등 최근 독도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영유권’이라는 법률용어를 쉽게 접하게 된다. 그런데 이 용어가 ‘일본식’ 용어라는 점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광복 68주년을 맞지만 아직도 법조계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 중 일본식 법률용어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검찰수사 과정이나 법원 소송과정에서 일본식 법률용어가 여전히 공공연하게 사용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일본식 한자어 등이 남아있으나 영유권(領有權)이라는 단어는 흔히 쓰는 용어가 아니다. 이 용어는 ‘점령’과 ‘소유’가 결합된 일본식 법률용어. 따라서 ‘영유권’ 대신 ‘영토주권’이나 ‘영토관할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비단 ‘영유권’ 뿐이 아니다. 또 다른 일본식 법률용어로는 경찰·검찰 수사과정에서 흔히 쓰이는 ‘신병(身柄)’이라는 용어가 대표적이다.
‘신병’은 사람의 몸이나 신분, 또는 사람 그 자체를 가리키는 일본어 ‘미가라(みがら)’를 그대로 한자로 표기한 것. 문제는 ‘신병’이라는 말에는 신참병사를 가리키는 ‘신병(神兵)’이나 몸에 병을 얻었을 때의 신병(身病)의 의미로 혼동될 수 있는 용어라는 점이다.
‘향응(饗應)’도 일본식 용어지만 법조계에서 두루 쓰인다. ‘음식과 술을 접대받다’는 뜻의 ‘향(饗)’과 ‘접대받다’는 뜻의 ‘응(應)’이 같이 쓰이는데 “한 글자로 사용 가능한 단어도 두 글자로 만드는 일본식 관습으로 형성된 법률용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이 밖에 흔히 판결문 등에서 볼 수 있는 시정(施錠)은 ‘잠금’으로, 감안(勘案)은 ‘고려’, 납득(納得)은 ‘이해’, 논지(論旨) ‘말하는 취지’, 지분(持分) ‘몫’ 등도 일본식 한자어가 법률용어로 그대로 쓰이는 경우다.
일반인들이 판결문을 볼 때 혼동되는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할 것이다’와 같은 이중 부정도 대표적인 일본어 번역투로 ‘~해야 한다’로 간결한 표현이 필요하다.
이 같은 일본식 법률용어 사용은 독자적인 법률문화 발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꼬집었다. 일본식 법률용어 사용은 ‘중의적 해석’ 등의 우려가 있으며 이 같은 부작용들은 결국 일반인들의 ‘법 접근성’을 가로 막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주지역 한 변호사는 “법률 전문가인데도 어떨 땐 뜻을 한참 생각해야 하는 일도 있다”며 “이른바 ‘법률용어’를 영어나 중국어처럼 배워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본식 법률용어를 성급하게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도 만만찮다. 자칫 용어의 혼란이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법원이 지난 3월 ‘법원 맞춤법 자료집’을 7년 만에 개정·배포하고, 이런 일본식 표현을 바꿔 쓰도록 권고했지만, 기본법의 용어 정비에는 사실상 손을 쓰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한 판사는 “법조계 내부에서도 용어 순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면서 “다만 ‘인가’ ‘허가’ 등과 같이 오랜 기간 사용된 법률용어를 바꾸는 일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도근>